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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도자

2017-03-14 (화) 김성실 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권정의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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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미국이나 한국의 혼란스런 상황을 보며 한 나라의 지도자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지난 달 은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 )”였다. 초기에는 노예 해방의 대명사이기도 한 링컨 대통령과 흑인 지도자 (프레드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의 생일이 들어 있는 2월의 두 번째 주를 “ 흑인역사의 주(Negro History Week )”로 기념해 오다가 1976년 건국 200주년을 자축하며 아예 2월 한 달을 역사의 달로 제정하였다.

미국인들은 ‘흑인 역사의 달’ 을 미국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정책으로 감추어졌던 흑인 지도자들의 공적을 기념하고 숨겨졌던 차별역사를 들추어 내어 역사를 다시 배우는 기회로 삼고있다.


노예로 태어나 노예제도 폐지와 인권평등을 위해 일생을 바친 프레드릭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교육을 미국에서 받지 않은 이민자들 외에는 거의 없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흑인역사 기념연설에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모르는 일반적인 칭찬 몇 마디로 끝내어 매스미디어에서 논란이 일었었다.

우리 한인들에게도 어쩌면 생소한 이름일 수 있는 프레드릭은 1818년 메릴랜드 주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고 대부분의 노예들 처럼 그 역시 자신의 생일 증명서류가 없어 장성한 후에 2월 14일을 자신의 생일로 삼았다. 아버지는 농장주인일 가능성이 많고 아기 때에 어머니와 헤어져 외할머니하고 살았으나 일곱 살 때에 다른 농장으로 보내졌고 열 살 때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는 여러 주인의 손을 거쳐 12살에 정착한 농장의 여주인으로 부터 인간대접을 받으며 글을 배웠으나 이를 알게된 여주인의 남편이 노예가 글을 깨우치면 자신들이 위험해 질 수 있다 주장하여 가르침은 중단되었다. 프레드릭은 포기하지 않고 백인아이들로 부터 간간히 글을 배우며 독학하였고, 농장을 탈출한 뒤 기차로 뉴욕시로 도망가 결혼을 하고 어머니 성을 따랐던 이름을 더글라스라 바꾸어 자유인 생활을 하였다.

언변술이 유난히 좋고 글을 쓰고 읽을 줄 알았던 그는 노예제도 폐지주장 연설을 수없이 하였으며 목사 안수를 받고 자서전도 출판하였다. 그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어 불란서어와 네덜란드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후에도 몇 권의 책을 저술하여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프레드릭의 정체가 옛 농장 주인에게 알려져 다시 노예로 돌아가야 됨을 염려한 지인들이 권고로 그는 아일랜드로 피해 그 곳에서 2년간 백인과 동등한 대접을 받으며 노예폐지를 주장하는 연설을 하여 지도자층의 지지자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그의 연설장은 늘 초만원 이었다.

안나 리차드슨(Anna Richardson)이라는 여성은 프레드릭의 옛 농장 주인에게 몸 값을 지불하여 그를 법적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미국으로 돌아 온 그는 “The North Star (북극성)” 라는 주간지를 발간하여 그와 동조하는 백인들과 함께 <남녀의 인권은 평등해야 하며, 진실은 인종차별을 하지않으며, 하나님은 만인의 아버지로서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다>라는 모토로 인권운동을 하였다.

그가 죽은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우리는 이 당연한 말을 곳곳에서 똑같이 반복하여 주장해야 함은 슬픈 일이다. 특히 괄목할 것은 프레드릭은 흑인인권 만이 아니라 그때부터 여성과 미 원주민과 모든 이민자에게도 백인과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자신의 비참하고 열악한 경험을 넘어 넓은 안목으로 사회정의를 주장했던 그의 노력과 정신은 가히 진정한 지도자로서 기념될만 하다.

<김성실 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권정의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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