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표범의 반점

2017-03-07 (화) 09:13:28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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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선거 캠페인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가를 결정하는데 자리보다 중요한 것은 습관이다.

이 문제를 누구보다 먼저 깊게 연구한 사람은 모르는 것이 없어 ‘아는 자의 스승’으로 불린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인간의 덕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선행의 습관이 몸에 배어 완성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70 평생 거짓말을 밥먹듯 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 취미이면서 돈과 여자와 쾌락을 탐하는 저질스런 삶을 사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느 날 대통령이 됐다고 갑자기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지난 한 달여 트럼프가 보여준 모습은 캠페인 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 지난 주말 그는 느닷없이 2016년 대통령 캠페인 기간 동안 버락 오바마가 자신의 전화를 도청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늘 그렇듯 이를 뒷받침할만한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미국의 대통령이다. 만약 그런 사실이 있다면 오바마가 도청을 지시한 문서와 도청 기록이 있을 것이고 관련 부서에 지시하면 이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이 법무부에 트럼프의 주장이 근거없음을 밝히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을까.

그러나 이보다 트럼프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은 6일 내린 회교권 6개국 국민들의 미 입국을 금지한 행정 명령이다. 이 행정 명령은 그가 내린 회교권 7개국 국민의 입국을 금지한 행정 명령이 시애틀 연방 지법과 샌프란시스코 연방 항소법원 명령으로 효력이 중단된채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새 행정 명령은 이라크를 입국 금지 대상 국가에서 제외하고 영주권자와 이미 비자를 받은 이 나라 학생, 관광객, 친척 등의 입국은 허용하고 있다. 이라크가 빠진 것은 이라크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 경우 ‘테러와의 전쟁’에서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한 이라크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국무부와 국방부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번보다는 나아졌지만 이 명령도 회교도에 대한 반감과 차별이 바닥에 깔려 있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 내내 당선되면 회교도의 입국을 금지하고 미국 내 일부 회교 사원을 폐쇄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것이 종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연방 수정 헌법 1조에 위반되는 것임을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명령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는 지난 번보다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이 명령으로 피해를 입은 소송 당사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외국인은 미국 법원에서 미 입국을 허용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적법 절차’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미국 안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지난 번 행정 명령 때 연방 항소 법원은 미 입국이 금지된 학생의 입장을 대리해 소송을 제기한 워싱턴 주의 법적 자격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명령은 이들의 입국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또 행정 명령의 효력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이것이 발효할 경우 “직접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새 명령은 이들 국민 입국을 영원히 불허하는 것이 아니라 90일간 비자 발급을 동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증명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 남은 것은 이 명령이 회교도에 대한 차별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민권 변호사들은 캠페인 기간 동안 트럼프가 내뱉은 반회교도 발언을 고려할 때 이 명령의 진짜 의도는 회교도 차별이 명백하다고 보고 있다.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는 두고봐야 할 것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은, 특히 70 먹은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에티오피아인이 피부색을 바꿀 수 있는가. 표범이 반점을 바꿀 수 있는가. 그렇다면 악에 물든 인간도 선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던 유대의 선지자 예레미아의 말이 떠오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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