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포분열로 짧아지는 ‘텔로미어’ 그 길이가 노화·수명 결정
고혈압·당뇨병 환자 텔로미어 정상인보다 다소 짧지만 스트레스 많은 사람도 짧아
▶ “검증되지 않은 가설 의존보다 식습관 개선·운동 집중해야”
노화를 방지한다는 연구가 발표되면 흥분한다. 한정된 수명을 살다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적 반응이다.
늙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의학자들은 노화와 관련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TXNIP 유전자, 크로토 유전자, 니코틴산 모노뉴클레오티드(NMN), 텔로미어(telomere)… 현재까지 연구를 통해 노화를 억제할 수 있다고 밝혀진 물질이다. 하지만 아직 가설에 불과해 임상시험을 하려고 해도 수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손영배 아주대병원 유전학클리닉 교수는 “노화 연구 중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고 아직 가설을 검증하는 초기단계”라고 말했다.
텔로미어 짧아지면, 세포분열 못해 노화돼
노화문제를 해결할 유력후보로 ‘텔로미어’가 꼽힌다. 텔로미어는 그리스어로 ‘끝과 부분’이라는 뜻이다. 세포의 염색체 말단부위가 풀리지 않게 양 끝을 감싼 단백질 성분의 핵산서열을 지칭한다. 운동화 끈 마지막에 달려 있는 매듭 같은 존재로 염색체가 온전히 복제되도록 돕는다.
텔로미어는 세포분열이 반복되면 짧아진다. 텔로미어가 세포분열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아지면 복제를 중단한다. 세포분열이 중단되면 세포는 죽게 된다. 세포노화의 시작이다. 김명신 서울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연구결과 태아에서 분리된 세포는 100회, 노인의 세포는 20~30회 분열했다”며 “세포분열 횟수가 줄면 세포가 죽어 노화가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텔로미어가 세포노화와 관련 있다는 ‘텔로미어설(說)’의 이론적 근거는 확립됐다. 텔로미어를 만드는 효소인 텔로머라이제를 발견한 엘리자베스 블랙번 박사와 조스택 교수, 텔로머라이제 역할을 규명한 캐럴 그라이더 교수가 이 이론으로 2009년 노벨의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5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쌍둥이의 텔로미어를 비교연구한 것도 텔로미어설과 관계 있다. 쌍둥이 동생인 우주비행사 스콧 켈리는 2015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340일 동안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생활하고 지구로 돌아왔다. NASA는 스콧의 귀환 후 그와 지구에서 생활하던 쌍둥이 형 마크의 텔로미어를 비교해 무중력 생활을 한 스콧의 텔로미어가 길어졌다고 발표했다. NASA는 “소콧의 텔로미어가 얼마 뒤 원래 길이로 다시 짧아졌지만 우주생활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고혈압ㆍ당뇨병 환자 텔로미어 짧아
텔로미어는 노화뿐 아니라 건강의 ‘바로미터’다. 세계적인 의학저널인 란셋(Lancet)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혈압, 대사증후군, 당뇨병 환자의 텔로미어는 정상인보다 짧았다. 김 교수는 “경도인지장애, 치매 환자의 텔로미어가 정상인보다 짧다”며 “심혈관질환자는 물론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이의 텔로미어도 짧다”고 말했다.
텔로미어가 노화와 수명을 결정하는 물질로 밝혀졌지만 문제도 있다. 줄기세포와 체세포는 세포분열을 반복하면 텔로미어가 짧아지지만, 암세포는 격렬히 세포분열해도 짧아지지 않는다. 박상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는 “텔로미어가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동물실험 결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해 임상에 활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페인 국립암연구소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쥐의 온 몸에 텔로미어를 과(過)발현한 결과, 수명을 크게 늘릴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쥐에게 암세포가 많이 발생했다.
소식 등 건강한 생활습관 유지가 노화 늦춰
노화는 새로운 유전자가 출현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유전자 때문에 생긴다는 게 현재까지 연구결과다. 박 석좌교수는 “소아조로증인 프로제리아(Progeria)도 상염색체 내 유전자 돌연변이로 생긴다”며 “노화는 기존 유전자 문제 때문이어서 ‘유전자 가위’ 등 기존 유전자를 회복하는 연구로 선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건강한 생활습관 유지가 노화방지의 지름길이라는 지적이다. 이덕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소식(小食) 등 식습관을 개선하고 지속적으로 운동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다”며 “검증되지 않은 연구결과에 기대하기보다 인류가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한 방법을 실천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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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중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