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끝자락. 추운 겨울은 가고, 이젠 봄이다. 봄엔 만물이 소생한다. 생명의 잉태를 초록색 움튼 싹으로 보여준다. 초록은 봄이요 생명의 색이다. 그래서 봄은 생명의 탄생을 상징한다. 봄은 만물이 생명의 근원을 다시 얻어 소생하는 계절인 것이다.
봄은 시작의 의미를 지닌다. 계절의 시작이다. 계절은 단순히 자연계의 순환이 아니다. 재생과 죽음의 반복적 행위다. 봄은 만물이 다시 생명을 얻어 새 삶을 영위하는 시작이다. 여름, 가을의 삶을 지난다. 겨울을 통해 죽음도 경험한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새로운 재생의 삶을 살게 된다. 계절은 부활이 약속된 죽음의 반복인 셈이다. 그래서 봄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다.
봄. 봄은 참 예쁜 이름이다. 순수한 우리말이라 더 매력적이다. 봄의 어원은 몇 가지 설이 있다. 어떤 이는 불의 옛말 ‘블(火)’과 오다 명사형인 ‘옴(來)’의 합성어라 말한다. ‘블+옴’이 합한 뒤 ‘ㄹ’받침이 떨어져 나가면서 ‘봄’이 됐다는 것이다. 봄의 근원적 뜻은 따뜻한 불의 온기가 다가옴을 가리킨다는 의미다.
최창렬님은 ‘아름다운 민속어원’이란 책에서 봄은 ‘보다(見)’라는 말의 명사형인 ‘봄’에서 유래됐다고 말한다. 봄볕은 받아 따스한 기운에 생기를 얻어 만물이 생동하는 활기찬 자연의 모습을 ‘새로 본다’는 뜻이 ‘새봄’의 준말이라고 설명한다.
한자로 봄을 뜻하는 춘(春)자의 어원도 흥미롭다. 춘(春) 자는 원래 두 상형문자를 합해서 이루어진 회의문자다. 뽕나무 상(桑)자의 옛 상형문자와 해를 뜻하는 날 일(日)자의 옛 상형문자를 합한 회의문자가 바로 춘(春)의 옛 글자이다. 따라서 중국의 봄은 따사한 봄 햇살을 받아 뽕나무의 여린 새 움이 힘차게 돋아나오는 날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뜻은 영어의 봄을 가리키는 'Spring'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Spring'은 원래 돌 틈 사이에서 맑은 물이 콸콸 솟아 나오는 옹달샘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솟아나온다‘는 뜻을 담아 땅을 뚫고 새 움이 돋아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은 것처럼 앙상하게 메말랐던 나뭇가지에 잎이 새로 돋아나오는 계절을 말한다.
꽃망울이 터져 나오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튀어나오는 계절인 봄을 뜻하게 된 것이다. Spring 역시 봄의 생동감 넘치는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봄을 ’Spring'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부터라고 한다. 샘물이 새싹처럼 솟아오르는 계절이라 ‘spring time'이라 했다. 용수철처럼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이란 의미로 ’spring season'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아예 봄을 ‘spring'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16세기 전에는 봄을 ’Lent'라 했다고 한다. Lent는 기독교에서 예수의 고행을 기리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부활절 일요일 전날까지의 40일간을 일컫는 사순절을 의미한다. 사순절은 3월과 4월에 걸쳐 있어 봄의 시작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봄’을 ‘Lent'라 불렀던 것이 아닌가 싶다.
봄에 대한 느낌은 동서양에서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하지만 봄을 부르는 표현은 나름대로 차이가 있다. 한자로 봄인 춘(春)자는 뽕나무 새순이 돋는 날을 의미한다. 영어의 ‘Spring'은 삼라만상의 생기가 새로 올라온다는 뜻이다. 이 표현들은 모두 자연을 주체로 솟아오른다. 자연중심의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말 ’봄‘은 사람이 주체다. 대자연의 움돋는 생기를 새롭게 보기 때문이다. 봄은 인간중심의 이름이다. 우리말 ’봄‘이란 표현이 훨씬 차원 높은 발상인 셈이다.
봄, 봄이다. 산뜻한 바람이 나풀거린다. 햇살은 언 땅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는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하나 둘 얼굴을 내민다. 뒤뜰엔 언제 자랐는지 수선화가 한참 솟아나왔다. 이름 모를 봄나물들도 파릇파릇 새싹이 올라왔다.
우리 집 식탁에도 봄이 왔다. 냉이 된장국이 올라왔다. 달래 양념장도 등장했다. 여기저기 온통 봄소식이다. 흔히 봄은 여성의 계절이고 가을이 남성이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봄이 오면 가슴 설레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의 가슴 속에도 새싹이 돋는다. 향기 그윽한 꽃잎들도 품게 된다. 꽃이나 잎이 아무리 시샘해도 여전히 봄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봄,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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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