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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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평등

2017-02-25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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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얼굴은 모두 틀리다. 또 키가 작은 사람, 큰 사람. 몸이 뚱뚱한 사람, 홀쭉한 사람 등 사람은 같은 시에 태어난 쌍둥이라도 똑 같지는 않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 나는 이런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미리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100% 수동적인 태어남. 부모에 의해 태어난 인간. 평등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다.

평등이란 사람의 키를 모두 똑같이 만드는 게 평등이 아니다. 키가 큰 사람은 큰 데로, 작은 사람은 작은 데로 그대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평등이다. 평등은 곧 자연스러움에서 시작된다. 만물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자연스러움.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이 또한 평등이다. 태어남과 죽음이 모두에게 주어진다는 것, 평등이다.

<장자>의 외편 중 변무(?拇)편에 이런 글이 나온다. 물오리는 비록 다리가 짧지만 그것을 길게 이어지면 괴로워하고, 두루미의 다리는 길지만 그것을 짧게 잘라 주면 슬퍼한다. 때문에 본래부터 긴 것을 잘라서는 안 되며 본래부터 짧은 것을 이어 주어도 안 된다. 생겨난 그대로, 자연스레 살아가게 그냥 두란 뜻이다.


이렇듯, 평등이란 본성을 소중히 여기어 주는 데 있다. 본성(本性:nature)이란 개별 존재가 가지고 있는 성품 또는 성질을 말하며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사전엔 “본성이란 사람의 경우 본디부터 타고난 성질, 즉 천성(天性)을 의미하며 사물이나 자연현상에서는 원래부터 있던 특성을 뜻 한다”라고 돼 있다.

본성이 있나 하면 개성도 있다. 개성(個性)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품성이다. 육체적으로 말한다면 각자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얼굴 등의 신체 조건이 될 것이고 마음으로 친다면 서로 다른 품성이 될 거다. 이처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주고 배려해 주는 마음과 행동이 평등이요 공평함이라 할 수 있겠다.

가끔 한국방송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걸 그룹(girl group)들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어쩌면 얼굴이 그렇게 똑같을 정도로 생겼을까. 전부 고대 미인 서시(西施)를 담게 만든 인형과도 같다. 서시는 기원전 5세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살던, 고대중국을 대표하는 4대 미녀 중 한명으로 그녀를 본 물고기도 넋을 잃었단다.

개성이 곧 평등인데, 그들에겐 개성이 없다. 왜냐하면 성형수술을 통해 똑같이 만들어진 인형을 보는 것 같기에 그렇다. 이렇게 만들어진 얼굴은 외모지상주의를 대표한다. 요즘 일부 여성들. 얼굴만이 아니다. 몸의 구석구석을 수술한다. 작은 가슴에 실리콘을 넣어 부풀게 만드는 등 자연스런 곳은 찾아 볼 수 없게 만든다.

예뻐지려고 하는 마음을 탓할 수는 없지만 왜 생긴 그대로, 자연스런 모습 그대로 살아가지를 못하는 걸까. 잘 보이려 하는 것, 이것도 인간의 본성중 하나이기에 그런 걸까. 이제는 여성뿐만이 아니고 남자들도 성형수술을 한다. 한국의 남자 탤런트 중에도 성형수술을 했음이 밝혀지곤 한다. 그래서 미남이 된다.

어머니와 막내 여동생이 여섯 발가락을 갖고 태어났다. 신발을 신으면 티어 나온 발가락 때문에 상처가 생기고 물집이 생겨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하늘이 내린 고통. 그래서 어머니도 여동생도 여섯째 발가락을 수술해 잘라내 버렸다. 그때부터 고통은 사라졌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하는 성형수술. 누가 말할 수 있겠나.

하늘은 참으로 평등하고 공평한 것 같다. 금수저로 태어났든 흑수저로 태어났든, 키가 크든 작든, 부자든 가난하든, 잘났든 못났든, 배웠든 못 배웠든, 눈이 파랗든 까맣든, 세상을 떠나는 죽음에 있어서만은 모두에게 공평무사히 행사되니 그렇다. 죽음은 자연스런 현상, 네이쳐(nature), 즉 우주의 품에 안기는 관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이는 것이 평등이다. 두루미와 오리의 다리, 천성과 본성을 소중히 여김이 평등이다. 서시를 닮으려는 외모지상주의, 지양(止揚)돼야 한다.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 친구와 친구의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공통점을 찾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움이요 평등임에야.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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