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Roe v. Wade(유산 논란: 의학적 생명의 시작)

2017-02-25 (토) 조은숙/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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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숙/의대교수

유산논란이 있을 때마다 역사적 ‘Roe v. Wade 판결’이 거론되는 것을 들으면서 어떻게 된 사건인가 은근히 궁금했었다. 그런데 오늘 워싱턴 포스트에 그 사건의 원고였던 Norma McCorvey 여사의 부고와 더불어 그 사건의 경과가 실렸다. 사랑받지 못하고 가난했던 그녀는 사춘기부터 문란한 성관계를 맺었고 약물과 알코올중독으로 중3 때 중퇴를 한 경력의 여인이었다. 그러다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유산의 길을 찾느라 젊은 변호사를 만났던 거라 했다.

그런데 그 변호사 자신이 유산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Jane Roe로 알려진 Norma의 상황을 이용하여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되었단다. 유산은 여자가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유에 속한다는 이유로 국헌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내려졌고 그 후 미국에서만 해도 무려 5,000만의 태아가 합법적으로 유산되었다. 그 판결이 났을 때는 Norma의 아이는 이미 2살 반이었고 어떤 사람에게 입양되어 키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pro-choice의 아이콘인 Norma는 후에 생각을 바꿨다. 유산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임신 3개월 이내면 몰라도 그 후의 유산은 잘못이라는 주장 때문에 임신 전반에 걸쳐 유산이 허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pro-choice 여성운동자들에게 지탄을 받으며 살다가 양로원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단다. 임신 초기의 유산을 말기유산과 구분해서 생각하는 이유가 태아의 심장박동이 들리고 엄마 배를 차는 등 사람처럼 움직이기 전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온 것 같은데 그게 정말 그런가?

아직 가라오케가 나오기 전인데, 옛날에 들었던 유행가, 샹숑, 가곡 등의 가사를 모두 외어 부르는 선배가 있었다. 내게는 그가 기인같이 느껴졌다. 그때만 해도 한번 만났던 사람은 어디서 만나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어순까지 명확히(?) 기억한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가사나 시 구절만은 외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억력이 좋은 우리 딸아이가 꼭 나처럼 가사와 시 구절에는 손을 들고 만다. 그 딸아이의 딸이 자라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도 그 나이의 우리 딸하고 똑같은지, 딸과 손녀의 사진을 놓고 헷갈릴 정도다.

세포의 핵 속에는 46개의 유전자가 두 개씩 짝을 지어 있는데 정자와 난자는 각 쌍에서 한 짝씩만 가진 특수 생식세포다. 그런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하나가 되면 다시 46개의 염색체를 가진 완전한 세포가 된다. 이 수정란은 하나의 유일무이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든 프로그램을 지니고 있다. 필요한 것은 자궁이라는 환경이고 탯줄을 통해 전해지는 엄마의 영양뿐이다. 자연환경을 방해받지 않는 한, 수정되는 그 순간부터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 되기 시작한 하나의 생명이라는 말이다. 아직 개구리로 탈바꿈하지 않은 올챙이라고 생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는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러하듯이, 태아를 위해서도 태아의 환경을 더 좋은 것으로 만들어주는 선택의 자유가 있을 뿐이 아닐까? 자신의 자유나 편의함을 위해 자식을 죽인 엄마가 있다는 뉴스를 읽는다면 ‘인간도 아닌 엄마’라고 어이없어 통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태아를 직접 보지 못한다는 한 가지 이유로, 유산이 여자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것이 정말 천륜에 맞는 것일까? 힘 있는 갑이 힘없는 을을 죽여도, 살려도 좋다는 이론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사뭇 무겁다.

<조은숙/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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