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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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God bless America’

2017-02-25 (토) 김주앙/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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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봄이 되면 어김없이 기억의 저편이 떠오르고 있다. 쏴~쏴 황량한 바람이 가슴 한 가운데를 순간순간 할퀴어드는 기억이다. 9.11 흙바람이 일상의 근원지가 되고 있었다. 한 해의 끝 시간은 가차 없이 멈추고 만 듯 했다. 어찌 해를 마감하고 새해는 또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그러던게 어느새 또 봄이 다가오곤 했다. 그런 중에 한 낭보가 날아들었다. 기독R동아리의 연극 초대장이었다.

타이틀은 ‘God bless America’ K목사님의 따끈한 각본에 연출은 진짜 왕년의 명감독이던 K씨가 맡았다는 완전 아마추어 연극판이다. 가기로 작정했다. ‘장소는 NJ 티넥에 있는 한밝교회다. 한밝? 연극하고 ‘한밝’이란 단어가 잘 아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한숨에 달려갔다. 교회 안 실내전체가 캄캄한 어둠이다. 밝음을 등에 업고는 어둠 속 한 치의 분간은 더 어려웠다. 무대는 더 깊은 궁창과도 같은 어둠 이었다.

우리 관객들은 어둠의 침묵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갑자기 낯익은 곡 ‘비창’의 ‘아다지오와 안단테’(?)를 마구 넘나드는 폭풍 같은 피아노 소리가 무대를 휘몰아쳤다. 서늘했다. 피아노음악의 진수를 뼈 속까지 맛보는 순간이었다.


“…엄마, 나... 어어.. 근데 지금 우리 빌딩이 이상해. 엄마 앗, 발 밑이 막 마구마구 흔들려요. 아 아…앗!”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모녀의 다급하고 애절한 음성이 연극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랬었지. 9.11아침의 맨하탄은 절규 같은 통화의 비명소리들이 산산이 부서져 메아리 쳤었지… 잠시 생각에 잠길 새도 없이 질풍 같은 피아노의 불협화음은 무대와 실내 전체를 다 삼킬 듯 거세게 연타로 두들기며 마침내 어둠을 서서히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조명은 검푸른 빛으로 바뀌고 하나 둘씩 검은 휘장을 두른 ‘영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품인 대형 선풍기가 벽에 장식한 성조기와 영혼들의 검은 휘장을 찢어 갈라놓듯이 윙윙 불어대고 바람에 이리저리 파편들이 흩날리고 있다.

‘아 여기는 어디인가, 이 음산하고 무서운 어둠은 무엇인가 ‘여보세요 당신은 누구세요, 나 빨리 돌아가야 해요,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 ‘왜 하필 나에요? 내가 왜? 왜? 왜?’ 영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질타의 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미국의 죄악과 교만함을, 삼손과 같은 음란의 정욕을, 거짓과 속임수들을, 너희들의 죄악 때문이었노라고.

우리는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고... 몸부림했다. 그 울부짖음 사이로 계속 이어지는 합창소리가 화음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 사랑하는 아들, 딸 들아… 그렇게 시작한 소리는 강약의 리듬을 타며 말세의 때와 저주를, 사탄의 음모와 짐승의 표를, 선과 악의 싸움들을, 그리고 다 이루어내는 예언자들의 선포로 마치 오페라의 형식으로 연극의 마침표를 찍어내고 있었다.

조명이 켜지고 우리 관객들은 겨우 수줍은 얼굴들을 어설프게 내밀었다. 어디선가 새로운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었다. 관객들 속에서 한 소방관 차림의 남성이 Luther의 ‘내주는 강한 성이요~~’를 탈진 한 듯 허탈한 음성으로 부르며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때 한 꼬마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깡충깡충 무대 위로 뛰어 오르다가 소방관 아저씨와 마주치게 된다. 꼬마는 물 한 컵을 들고 소방관아저씨에게 가서 내밀었다. 아저씨는 물을 다 마시고 기운을 얻은 듯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관중들도 모두 함께... 소방관아저씨와 꼬마는 누구 먼저랄 것 없이 다시 큰소리로 새 노래를 시작하고 있었다.

‘God bless America’ 우리는 모두 일어나 손에 손을 잡고 몇 번이고 목청껏 소리지르며 합창했다. 관중과 함께한 God bless America 합창의 감동은 연극의 절정이었고 긴 여운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집으로 가는 밤길은 흔적같이 황량한 흙바람이 조금씩 잦아드는 듯 했다. 그렇게 연극은 아주 작은 입자의 씨앗이 되어 9.11의 충격과 과 슬픔과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김주앙/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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