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머니쥐

2017-02-23 (목) 09:25:02 Sheila Black (1961~) / 임혜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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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쥐

김경애,‘Garden #1’

일종의 스릴이야-배를 깔고
길 위에 누워있는 것

눈 뭉치 같은 하얀 털

하나하나 똑같이 접힌
과수나무의 봄꽃 같고


아직 둥지를 떠나보지 않은
어린 새 같네

위협을 느끼면 저들은 그렇게 하지
움직이지 않는 것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막대기로 찔러대도

진주빛 발톱은 빳빳하기만 하지, 겨울나무가
잔가지들을 빳빳이 세우듯이,
죽음은 어떤 것일까?

주머니쥐는 알지- 저 엄숙한 지혜
죽음속의 영원한 경계(儆戒)

끝없이 움직이는 우리를
바라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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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섬이라 불리는 주머니쥐는 위험에 처하면 본능적으로 죽은 시늉을 한다. 몸이 딱딱해지고 냄새까지 피우니, 정말 죽은 짐승이 된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참 묘한 생존의 지혜이다. 이렇게 죽은 듯이 엎드린 주머니쥐는 밖의 세계를 관찰하고 있을까? 죽음으로 위장한 채 본능이라는 아주 명징한 감각으로 밖의 세상을 면밀히 감시하는 것 말이다. 죽음도 아니고 생도 아닌 순간, 극단의 방법으로 생명을 지키는 주머니쥐를 통해 열어보는 생사의 비밀은 더욱 비밀스럽기만 하다.

임혜신<시인>

<Sheila Black (1961~) / 임혜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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