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생님
2017-02-22 (수) 09:28:18
김희원 / 버클리문학회원
얼마 전, 신문에 ‘깡통 소변’이라는 기사가 났다. 5년 전 발생한 일의 소송결과를 다룬 내용이었다. 샌디에고의 어느 학교에서 한 여고생이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려고 했으나 교사는 비품실에 있는 깡통에 볼일을 보라며 화장실에 가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교사의 말 대로 깡통에 소변을 본 학생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아 수치심에 전학을 가기도 했었고, 심지어 자살 시도까지 했다고 한다.
남의 일 같지 않은 내용이었다. 이십여 년 전 미국에 왔을 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딸은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자주 갔다. 소변을 자주 보는 체질인데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이니 긴장이 되어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담임선생님은 부모인 우리를 여러 차례 불러 아이에게 소변을 참는 버릇을 가르치라고 요구했다.
전학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라는데 하물며 말도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로 전학해온 아이가 긴장해서 그렇다는 것을 이해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웠었다. 원칙만을 중요시하는 미국인의 사고방식은 때론 배려심이 부족한 것이 단점이다.
시간이 흘러 친구들도 사귀고 학교에 적응이 되자 딸은 더는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는 일이 없어져서 큰 문제없이 청소년기를 지나갔지만 까닥했으면 깡통 소변은 우리 애의 경우가 될 뻔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나마 부모인 우리를 호출하는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한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었다.
<김희원 / 버클리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