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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닭울음이 주는 교훈

2017-02-16 (목) 우남수 목사/ 행복연구원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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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정유년 닭의 해 정월 초하루 아침,신년 탁상캘린더 앞에 앉아있다.

1월 첫장에 1일부터 31일까지의 직사각형들이 하얀 공백으로 무엇을 채워 달라는 듯 나를 바라본다.

시간과 세월을 생각하며 그것은 절대자 하나님께 속할것인데,그 잡을 수 없는 추상적인 것이 하나의 실체로 달력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며 숙연한 마음이 더 깊어져 거룩한 마음으로 승화되어 십계명을 들었던 모세의 마음처럼 두려움과 떨림으로 읍소(泣訴)한다.


“하나님 아버지,금년 하루하루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게 도와주옵소서”세월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동양의 영겁(永劫)이나 밤낮이 바뀌면서 세월이 물흐르듯 흘러간다는 광음여류(光陰如流)등의 표현은 불완전 하나 세월을 정의하기 위해 비유나 은유로 설명해 보려는 시도들이다.

그러나 어느것도 세월이 흐른다고 하지만,강물은 흘러 흘러 종국엔 바다에 모이지만 수억만년간 흐르고 흘러온 세월은 어디에 쌓여 있는지 종적이 없다.

성경은 이 영원한 세월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그 속에 우주창조의 시발점과 우리가 만든 시간의 마디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나 하는 답을 준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시93:2) “산이 생기기 전,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90:2). 그리고 창세기 1장 1절은 이 영원의 한 시점 “태초에” 하나님의 우주창조의 시작이 있었다는 것과 3절에서 5절에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는 일을 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약간 오버랩 되는 이야기가 14절에 나오지만,이미 셋째날이 지났으므로, 그 하루가 14절 이하 “하나님이 가라사대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의 하루와 일치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것이다.

영원한 시간을 한번에 파악하기엔 유한한 인생은 너무나 벅차기에,달로 주로 날로 쪼개서 생각한다.더 심각하기 위해 쪼개고 쪼개면 1년을 8750시간, 52만 5600분, 315만 6000초다.실로 엄청난 순간들이 지금도 날라가고 있고 그것이 또한 영원의 일부분을 깎아 먹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사트르는 인생을 “B와 D사이의 C” 라고 정의했다.영어로 “Life is Choice between Birth and Death”라는 것이다.


인생은 실제로 태어나서(Birth) 죽을때(Death)까지 인데 그 사이에 육신적인 생명이 있을 때,영원을 사모하며,세월의 주인 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선택해서 살아야 할것이다.

끝으로 유한한 인생이 여정속에서 하나님의 ‘때’(카이로스)의 중요성을 신구약 성경은 누누히 강조한다.구약의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3장에서 날 때 죽을 때, 심을때 뽑을 때 … 웃을 때 슬퍼할 때를 말하고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내 때’, 즉 마지막으로 그의 사명을 감당하는 죽음의 때를 말씀하셨다.크리스챤은 카이로스의 때를 분간 할 수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그 ‘때’가 주는 교훈으로 삶의 길을 바로 잡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정유년,닭의 해에 베드로에게 닥쳤던 기막힌 회개의 때가 닭 울음소리와 연관된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서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눅22:34) 는 예언대로 그가 세번 예수님을 부인 했을 때 닭우는 소리를 들었고,예수님이 그를 쳐 다 볼 때, 그 예언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 하니라”고 했다.그 후 그느 변화되어 주님이 부탁하셨던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사명을 죽을 때 까지 감당해 낸다.

정유년의 붉은 수닭처럼 영육간에 정정하기를 기도하자.올해 365번 우는 닭의 울음을 베드로가 들었던 회개의 닭 울음이 되게 하자.

용혜원 시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자.

주님을 늘 따른다고 무작정 장담했는데 / 세번이나 부인하니 닭 울음이 양심을 찢고 / 못난 목숨이 어처구니 없어 부끄러웠습니다. // (중략)내 한 목숨 살자고 나를 구원하신 /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 부인할 것이란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 졸렬한 꼴에 통곡해도 어리석었습니다 //늘 하늘의 뜻에 따르시는 / 주님의 눈길과 마주쳤을 때 / 사랑하심을 알았는데 온전히 따르지 못했습니다 //어설프고 부족한자의 참회를 받아 주시고 / 말씀의 통로가 되어 주시니 / 예수와 함께 죽고 살겠습니다.

<우남수 목사/ 행복연구원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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