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며, 특히 마지막 달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기쁘고 즐거운 일들보다는 우리를 괴롭고 슬프게 만드는 일들이 많다. 일년동안 쌓였던 문제들의 결말이 그렇게 정리되기 때문일것이다. 2016년 세모(歲暮)도 예외는 아니었고, 아니 그 어느해 보다 악화된 비참한 일들이 년말을 검게 먹칠했다.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세가지만 다시 깊이 생각해보며 배울점을 배워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
#1.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 이야기
친구 목사들과의 만난자리에서 진담반 농담반 “우리는 해외 어디가서 국적 밝히기가 창피하게 되었다”는 말이 나왔다. 한국도 미국도 대통령이 창피해서라는 말이었다. 미국 대선과정에서나 결과에서 일어난 비정상적인 해프닝은 미국 민주주의의 맹점이 어떤것인가를 더욱 실감나게 했다. 옥스포드 사전은 정확히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사실.진실보다 감정에의 호소가 사회에서 더 잘 통했다>을 택했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트럼프의 인격이나 성격문제다. 여성문제의 부도덕한 점이나 수차례의 파산법을 이용해 부채를 털고 그 덕분에 오랫동안 연방소득세까지 내지 않은 그의 양심은 한 나라의 국부가 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울 뿐이다. 더욱이 기독교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니, 물론 민주당의 낙태나 동성애 같은 진보적인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비하, 소수자무시, 극단적인 이민정책은 기독교정신에 더 크게 위배됨을 왜 인식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또 우리의 모국 박대통령의 보통 상식으로도 이해할수 없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그녀의 성장과정에부터 자란 심리적 장애 때문에 대통령의 최고권위를 사이비 교주 최태민의 딸과 같이 나누는 전대미문의 과오를 범한 것이다. 국민이 더욱 놀란 것은 이 사건이 대통령이 갑자기 권력욕이나 사리사욕에 도취해 헌정을 파괴하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문제의 뿌리가 40여년을 거슬러 올라갔고 긴 세월을 통해 박대통령의 자아 형성에 문제가 있었고 그로인한 과오를 범해 온 것이 하루 아침에 불거져 나온 것 이었다. 공교롭게도 박대통령의 등극의 경위를 돌이켜 보면 그녀는 2004년 3월 노 전대통령의 탄핵 역풍으로 난파위기에 몰린 한나라당 대표를 맡으면서 대선주자로 급부상 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2년 9개월이 지난 지금, 박대통령이 또 다시 ‘탄핵 대통령’이 된 것은 역사는 돌고 돈다는 교훈을 잊은 대한민국 대통령 史의 비극이 아닐수 없다. 앞으로 이런 연결고리는 꼭 끊겨야 될것이다.
#2. 죽음의 땅이 된 시리아
작은 불씨가 시리아 내는 물론, 주변국 그리고 세계 강대국들의 전쟁터로 만들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중동을 뒤덮은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지난 2011년 3월 남부의 작은 도시 다라의 한 학교 담에 혁명구호를 적은 10대들이 체포되 고문을 당한 것이 반정부 시위에 불을 당긴것이다. 이 작은 사건이 확대되어 시아파 수니파의 대립, IS의 개입등으로 누적 사망자가 30만 1000여명으로 증가되고, 1350만 난민을 낳아 국제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또 미.러의 힘겨루기의 각축장이 되었다.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한해를 보내며 새해에 보다 낳은 해결책이 나오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겠다.
#3. 오클랜드 웨어하우스 대형화재
이스트베이 오클랜드의 한 창고에서 콘서트를 즐기며 춤을 추던 100여명이 화재로 36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대부분이 20대~30대로서 인생의 꽃을 피우지 못한 젊은이들 이었다. 한국인으로는 그래픽디자이너 조아라씨가 화마에 희생됐고, 승Y씨는 불이나기 직전 음료수를 사기 위해 마켓에 갔다 온사이 불이나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어떻게 이런 비참한 일이 불시에 찾아오며 생사의 기로에서 갈리는 운명을 이해 할수 있는가?사랑의 하나님은 왜 이렇게 불합당하고 끔찍한 사건들을 허용하시는가?
성숙한 기독교 신앙의 특징중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받아들이는 역설성(逆說性)이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인간과 다르며,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롬11:36)는 하나님의 절대권에 순복할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섭리적 은혜(Providential Grace)”를 우리는 더욱 의지하고 앞으로 나가야 될 것이다.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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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수 목사/ 행복연구원 길라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