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밝고 평화로운 혁명의 시대

2017-01-10 (화) 09:15:13 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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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연상 퀴즈 놀이가 있다. 다음 말들을 보면 어떤 단어가 연상될 수 있을 것이다.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1789년 프랑스, 중국의 쑨원(孫文), 전봉준과 동학, 1960년 4.19 … ‘혁명’이라는 단어가 떠 오른다.

요즘 ‘혁명’이라는 말이 새삼 주목을 받는다. 지난 11월 전후로 시작된 고국의 촛불집회를 두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시민혁명’ 혹은 ‘촛불혁명’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물론 이를 ‘혁명’이라 부르는 것에 정서적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과거 혁명에 수반되었던 충돌과 유혈의 역사에 대한 기억이나 촛불 주도세력에 대한 이념적 거리감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혁명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변천을 살펴본다면 혁명이라는 말에 그렇게 민감할 필요는 없을지 싶다. 혁명에 대한 1차적 정의를 든다면 동양에서의 혁명은 역성(易姓) 혁명으로 새로운 왕통이 이전의 왕통을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는 것을 뜻 했고, 서양에서는 피지배계급이 기존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확장하고 사회체제를 변혁하는 일을 혁명으로 이해하였으며, 공산혁명은 프롤레타리아 곧 계급투쟁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산업혁명, 컴퓨터혁명, 정신혁명 등에서 보듯이 혁명은 사회구조 및 일상생활 전반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를 뜻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혁명의 본질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과거나 현재나 혁명의 본질은 “변화”이다.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낡은 것’을 바꾸어 버리자는 것이다. 진정한 혁명의 동기는 체제 전복이나 저항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 곧 인류의 진보에 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혁명은 인류의 진보를 위한 힘’이라 하였다. 오늘의 일상적 언어로 바꾼다면 혁명은 시민 곧 인류의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투쟁과 유혈이 따르던 무거운 혁명의 시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비장하고 어두운 색조도 경쾌하고 밝은 색으로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의 혁명은 평화롭고 경쾌하며 밝은 의미이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요즘은 어느 한 사람의 아이디어나 새로운 기기의 발명으로도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누구나 혁명가가 될 수 있다. 정치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면에서 경쾌하고 밝고 평화로운 혁명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런 면에서 고국의 촛불혁명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밝고 평화로운 혁명이라 할 만하다. 촛불집회의 목적이 단지 대통령 퇴진에만 머물지 않고, 시민의 주권이 존중받는 사회 곧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혁명의 방식도 신선하다. 연인원 천만여 명이 무질서나 폭력 행위 없이 평화롭게 모였고, 성숙한 시민의 품격을 유지한 백만 시위 군중, 문화적 표현과 정치적 요구가 어우러진 매우 독특한 집회였다.

변화는 혁명의 본질이기도 하며 우리 모두의 삶의 방식이기도 한다. ‘일신우일신 (日新又日新)’ 변화해야 산다. 그러나 변화의 길은 결코 호락하지 않다. 안팎으로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타협이나 포기에 머물기 쉽다. 변화에 성공하는 길은 시작의 요란함이나 거창함에 있지 않다.

아주 작은 병폐일지라도 크게 여겨 마음을 다해 바꾸려는 단호한 꾸준함에서 나온다. “어려운 일을 하려는 사람은 쉬운 일부터 하고(圖難於其易), 큰일을 하려는 사람은 작은 일부터 해야 한다(爲大於其細)”는(도덕경) 말이 있다.

새해를 맞아 더 나은 삶, 더 좋은 세상을 위하여 내 안의 나를 바꾸는 일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쉬운 일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나씩 바꾸어 가는 ‘경쾌하며 밝고 평화로운 혁명’을 기대한다.

<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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