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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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同調)’의 부메랑

2016-12-13 (화) 김재진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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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식문화는 단합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 특성을 잘 반영한다. 회식은 응집력 강화와 소속감 고취에 매우 효과적이다.

집단에 소속돼 있으면 집단과 개인의 결정이 달라 갈등을 종종 겪는다. 집단 요구에 맞춰 자신의 결정을 제어하는 사회적 행동을 흔히 ‘동조(同調)’라 부른다.

동조 현상은 일상적 결정에도 영향을 준다. 무슨 영화를 볼지 정할 때, 자신 취향에 따라 소신껏 택할 수도 있지만,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영화를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후자가 더 영향력이 큰 것 같다. 예고편 선전이 아무리 요란하다 한들, 재미있다는 입소문보다 더 효과적이지 않다. 관객 동원에 성공한 영화 대부분이 그렇다.


필자 연구실에서는 집단 동조를 연구하려고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 단어를 이용한 행동실험을 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기사’라는 단어를 보여주고 ‘기술자’ ‘신문’ 중 하나를 택하게 하면서 다른 사람 의견을 참고하게 했다. 그 결과, 자기 힘으로 판단한 경우 혹은 모르는 사람 의견을 참고한 경우보다 자기 소속 집단 구성원 의견을 참고한 경우가 반응 시간이 훨씬 짧았다.

집단에 동조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뇌 상태는 어떻게 다를까? 한 뇌연구에서 보는 방향이 서로 달라 모양의 동일성 여부가 애매한 두 도형을 제시하고, 실험 참가자의 소속 집단 사람들이 동일성 여부를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같이 알려줬다. 실험 참가자가 동일성 여부를 결정할 때, 나름 독립적 판단을 한 경우엔 공포 감정의 중추인 편도가 활성을 했지만 집단 구성원들 의견에 동조한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결국 소신에 따른 결정에는 불안이 동반된다는 사실이다.

집단에 동조하면 문제는 간단하다. 틀려도 같이 틀릴 것이니 잘못된 결정이라는 부담이 적다. 이처럼 집단 의견에 동조하지 않고 자기 소신을 주장할 때는 그만큼 부담도 따른다.

집단에 동조한 결정이 항상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같이 망할 수도 있다. 동조의 부정적 효과 원리를 보여주는 간단한 지각 실험이 있다. 한 집단 사람들에게 애매한 길이의 선들을 제시하고 길고 짧음을 판단하게 하는 과제를 주면, 답이 애매해 결정하기 어려워 앞사람 답을 따르게 마련이다. 앞사람이 답이 맞으면 집단 정답률이 높아지지만, 반대 경우라면 정답률이 낮아진다.

우리는 민주화 시대에 살면서 선거 때마다 선택하는데, 사실 일반인이 출마자를 자세히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집단에 동조한 선택을 한다. 결과적으로 맹목적 동조 결과가 최다수를 만들어 누구를 대표자로 뽑았지만 그 동조 선택이 부메랑이 돼 후회막급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요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게이트’ 뉴스를 접하고 있다. 이렇듯 일상이 돼 버린 한탄과 분노는 불행히도 우리에게 닥친 잘못된 동조 선택의 부정적 부메랑이다. 흔히 지도자는 외롭다고 한다. 지도자이기에 집단 구성원 다수의 뜻과 다른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독립적 상황 결정은 외로운 결정이다. 그 지도자가 대의를 위해 외로운 선택을 하면 그 집단에게는 행운이고, 자신과 주변인의 사익을 위해 외로운 선택을 하면 그 집단에게는 재앙이 된다.

<김재진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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