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숙해진 한국의 시위문화

2016-11-29 (화) 김명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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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지난 26일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 울려 퍼진 가수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은 참으로 감동스러웠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 노래 가사만큼이나 평화롭게 진행된 시위행렬은 새 세상을 염원하는 축제 같았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외침이 나라를 덮친 오물을 깨끗이 씻어 내는 함성으로 들렸다.
1980년에 이민왔던 나는 독재시대를 여러가지로 경험했다. 정권에 대한 비판을 조금이라도 할라치면 “너 입 조심해라. 그러다 잡혀갈라.”라는 말로 서로의 입단속을 해야 했다. 친구오빠가 데모를 했다는 이유로 잡혀가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자가 되는 걸 봤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상징했던 노래 ‘아침이슬’도 1975년부터 1980년까지 금지곡이었다고 기억된다. 그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시위로 간주되었다. 억압과 금지에 짓눌린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내재적 반항 의식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였다. 작곡, 작사자였던 김민기는 오랫동안 합법적 활동이 불가능한 불온한 인물로 간주되어 안타까웠다.


가금류 중 가장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 닭대가리로 대통령이 비유되고, 양희은이 시워현장에서 ‘아침이슬’을 목청껏 부를 수 있게 된 나라. 정부를 비방했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가지 않아도 되는 나라.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여러 건의 비극적인 사건이 드러나고 있지만 시민들은 ‘이게 나라인가!’라는 구호를 내걸 수 있고, 투쟁에 나서도 잡혀가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은 더 이상 독재의 나라가 아니다.

이 정도의 민주화가 이룩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가 뿌려져야 했던가. 화염병을 던지고 최루탄을 쏘며 수많은 목숨들이 희생되었다. 우리 민족은 어떠한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바른 길을 찾아 많은 고난을 극복해온 강인무구(强忍無垢)한 민족이다. 정의를 행하는 용기있는 민족이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전두환 소장이 권력을 잡는 모습을 본 위컴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던지 복종할 것이다.”는 참으로 치욕스런 발언을 했다. 그것은 우리 국민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건국 이념으로 교육과 정치, 문명과 윤리의 가치로 삼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싸웠고, 자부심을 키워온 우리 민족의 역사를 몰라서다. 성숙해진 국민들의 시위문화만 봐도 국민들은 다시는 파렴치한 대통령은 뽑지 않을 것이다. 권력자들도 모이만 주면 쥐약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먹으려드는 우매함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양희은이 시위 군중들 앞에서 ‘아침 이슬’을 힘차게 부르는 걸 들으며, 우리 민족의 불행이 희망이 될 것 같은 기대가 됐다. 현 시국의 문제들이 파생시킨 분노가 국민들의 의식을 깨우고, 내 모국이 재탄생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혼란의 절망 뒤에 오는 기쁨은 더 클 것이다.

<김명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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