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성공은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민주주의 등 통치제도 역사에 대한 회의와 고찰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몇 천 년 전에도 민주주의는 왕정(monarchy)과 함께 시도되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 등지에서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가 시도된 바 있었지만 ‘짐이 곧 국가이다’라는 왕권신수설에 밀려 인류는 오랫동안 왕조 통치나 귀족들의 봉건 통치 아래에 있어 왔었다.
그러나 왕권의 전횡에 뒤따른 중산층들의 불만은 왕도 법의 제한을 받아야 된다는 입헌 군주제로 변형되어오다가 18세기의 아메리카 소재 영국 식민지의 반역과 혁명을 효시로 프랑스 혁명 등이 뒤따르며 소위 민주주의가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주의는 1776년 출발 때부터 모순을 안고 있었다. 국민의 반인 여성들의 참정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몇 백 만에 달하던 흑인 노예들은 아예 인간이 아니라 사고 팔 수 있는 재산에 불과했으며 백인 남성들도 상당한 재산이 있기 전에는 선거권이 제한된 불완전한 제도였다.
본래 미합중국의 헌법에는 투표권자들의 직접 투표로 투표권자 수의 비례에 따라 선출되는 하원의원들의 임기는 2년으로 했으며,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한 주마다 2명인 상원의원들의 임기는 6년인데다가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되었다. 지금은 헌법 수정을 통해 상원의원들도 직선이 되지만 상원의원들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 절차로 하원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된 법도 상원에서 사장되는 관행은 아직도 계속 된다. 1965년의 민권 법안의 통과로 노예 해방이 된 100여년 후에나 흑인들의 참정권이 골고루 보장되어 현재에는 흑인 하원의원들이 몇 십 명에 달하고 있고 버락 오바마가 2008년에는 대통령의 당선되고 재선에도 성공한 역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사립대학들이 미국의 대표 또는 지배계급을 배출해왔지만 주립대학들의 설립에 뒤따라 주립대학 출신들도 사회 각계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서 사회계급간의 장벽은 상당히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1960년대 이후에는 미국사회를 실력주의(Meritocracy)라고 분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즉 전통적인 부유층이 아니어도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열심히 일하면 정치, 경제, 문화계의 엘리트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클린턴 부부나 오바마 부부의 성공이 그 점을 잘 예시한다.
그러나 2016년 대선에서 드러난 백인 소외계층의 불만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사회의 사회계층간의 이동이 실력주의의 해석같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러스트 벨트’에 사는 백인들은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졸업만 하면 GM이나 GE 같은 자동차나 전기제품 회사에 취직해서 자식들을 잘 키우고 교육시킬 수 있는 중산층이 되어 미국의 물질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지구촌이라고 표현되는 세계경제의 영향을 받는 20세기 말엽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유럽과 일본은 물론 한국과 중국 등의 경제발전으로 인한 경쟁체제에서 많은 생산시설들이 다른 나라들로 옮겨갔다. 많은 백인들은 임금이 적은 일자리를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이런 실정에서 이민, 특히 불법이민에 대해 인도주의적인 경향을 가진 민주당 정권에 염증을 느낀 것이 트럼프의 당선이란 이변을 가져왔음직 하다.
그러나 트럼프도 오래지 않아 반이민 정서를 가진 그의 골수 지지층을 실망시키게 될 것은 분명하다고 장담 할 수 있다. 우선 멕시코와의 국경선에 담장을 세운다는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멕시코에서 그 비용을 내게 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산속에 가서 바다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장관급인 유엔대사에 임명한 것만 보아도 트럼프는 자기를 무자격자로 맹공격했던 반대자들도 포용해야만 자기에게 반대표를 던진 시민들로부터도 지지와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집권은 미지수의 연속일 가능성이 크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골수 지지층의 반 엘리트, 반 워싱턴 정서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부는 대부분 일류대학 출신들인 전문가들 즉 실력과 능력을 나타내온 사람들로 구성될 것이라는 점이다. 엘리트의 지배는 계속될 것으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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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