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커네티컷/ 칼럼: 빛과 그림자

2016-11-25 (금) 06:18:32 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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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한 시간 시계 바늘을 뒤로 놓았는데 하루가 길어지고 해는 키가 줄었다. 저무는 해를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 때로는 모른 척 놓아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계절 탓으로 돌려본다. 어느 순간 찬 이슬이 내리고 가을꽃은 떠났다.

봄꽃의 화려함에는 견줄 바가 못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하는 것은 차라리 그 꽃의 운명이었다고 해도, 그나마 짧아지는 햇빛 탓에 보아 주는 이도 없었다. 그럼에도 오히려 주목받지 못함을 초조하지도 서운해 하지도 않았다. 그저 맑은 햇빛 아래 꽃으로 이름 불리어진 것에 고마워 하는 것, 그것이 가을꽃의 위엄이기도 하리라.

선거가 끝나고도 아직 끝나지 않은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뉴스가 날마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선거 운동 중에 논란이 되었던 후보 간 막말과 정치 공세를 들으면서도 막상 투표를 해야 할 때에는 미국의 미래에 대한 관심 보다는 이 땅에서 이민자로 살며 겪는 어려움에 끼칠 영향을 먼저 생각하게 됨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 당신은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또 어떤 사람의 ' 다시 이민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뉴스를 걱정스럽게 봤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이 땅에 대한 걱정과 혼돈은 나를 키워낸 고국 소식에 힘없이 덮여 버렸다. 대통령이 한 개인에 의해 휘둘려져 국정이 농락당했다는데 대해 아연 실색 할 따름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사실이 밝혀 질 때마다 진실을 바라본 다는 것이 참으로 곤혹스럽고 이제는 피로감마저 든다.

선거가 끝나고 패배를 인정한 힐러리 클린턴의 연설을 들었다. '이번 선거로 인해 갈등이 깊어졌지만, 제발 내 말을 들어주시라. 미국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 아이들도 높은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를 믿고, 우리가 믿는 것들을 위해 싸워 달라" 는 말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을 가진 이 나라가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동안의 논란은 접어 두고, 집 근처 등산로를 산책하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실로 열심히 살아 온 사람의 모습을 본다. 그녀는 선거에서 졌다고 쓰고, 인생은 진 것이 아니라고 읽었다. 단풍나무 때문에 초록 소나무가 빛나는 것인지 아니면 솔 빛 때문에 단풍이 더 붉은지를 생각했다. 더불어 그대가 있어 내 삶이 빛났는지 내가 있어 그대가 아름다운지를 혼자 물었다..

인생은 누구에게도 비루 하지만 더불어 누구에게도 눈물겹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신뢰 할 만큼의 거리, 걱정 될 만큼의 거리, 그리워 할 만큼의 거리, 그 거리가 텅 비어 있는 나무 가지에서 본다. 시간은 보내지 않아도 우리를 남겨놓고 지나간다. 그 남겨진 우리는 과거가 되어 빈 나무처럼 서 있으리라.

한국에서는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열리는 촛불시위가 열린다는 뉴스를 본다. 성숙한 시민들은 분노를 축제로 승화 시켰다. 언젠가 시간은 거짓을 속아낼 것이다. 거듭되는 사실의 폭로 앞에 변명을 듣고자 함이 아니라 진실을 듣고 싶은 것이다.

자연광의 위력에야 못 미치지만 해가 지고 나면 밝히게 되는 인공조명도 아름답다, 특히 촛불 아래에서는 적당히 말랑거리고 유순해지는지라 웬만한 거짓말도 기꺼이 믿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둠과 추위 속에 서 든 촛불이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추수 감사절. 집집마다 제단위에 쌓아놓은 정성어린 수확처럼 아름다운 장식들이 가득하다. 마음 또한 풍성한 감사와 드림의 시간들이었길 바라본다.

<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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