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뒤바뀐 노벨상

2016-10-18 (화) 09:33:47 민경훈 논설위원
크게 작게
서양 최초의 문학 작품은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다. 기원 전 8세기경에 탄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1만 5,000행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호메로스도 요즘 시인처럼 글로 작품을 남겼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면서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제대로 된 문자를 갖고 있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나온 것이 현존하는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에 관한 여러 시를 후대 사람들이 짜깁기 한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다시 민속 시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유고슬라비아 일대의 민속 시인들은 ‘일리아드’에 못지않은 방대한 서사시를 암송해 낸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운만 있으면 얼마든지 긴 시도 음악에 맞춰 낭송할 수 있음이 입증됐다. 이제는 ‘일리아드’가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서양 최초이자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의 하나로 손꼽히는 ‘일리아드’가 음유 시인의 창작물이었던 것이다.

올해 노벨 문학상은 현대의 음유 시인 밥 딜런에게 돌아갔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 ‘소낙비’(A Hard Rain’s Gonna Fall) 등으로 잘 알려진 밥 딜런은 60년대 월남전 반전 운동과 흑인 차별에 반대한 민권 운동의 기수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놓고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그의 노래 가사가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려 사회 변혁에 기여했다며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그가 받아야 할 것은 노벨 문학상이 아니라 음악상이라고 맞서고 있다.

서구를 대표하는 최초의 문인이 음유 시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래와 함께 부른 시를 썼다고 문인 자격이 없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문제는 가사의 수준이다. 그의 대표작 ‘바람만이 아는 대답’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를 인간이라고 부르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하나/ 모래 위에서 잠들기 전까지 하얀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하나/ 사용이 금지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포탄은 날아야 하나/ 친구여, 그 대답은 부는 바람 속에 있네.”이를 오리지널 음유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첫 부분과 비교해 보자. “뮤즈여, 수많은 아키아 인들의 손실을 초래하고/ 그 많은 튼튼한 영혼을, 위대한 전사들의 영혼을, 죽음의 집으로 던져 버리고/ 그들의 시체를 개와 새들의 성찬으로 만든/ 광적이고 실패할 운명을 지닌/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스의 분노를 노래하라./ 제우스의 뜻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뮤즈여, 인간의 제왕 아가멤논과 빛나는 아킬레스가 부딪친/ 그때부터 노래를 시작하라.”딜런의 가사도 아름답지만 그 깊이와 웅장함에 있어 호메로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리아드’는 강렬하며 박진감 있는 이런 시행이 1만행이 넘게 이어진다.

딜런이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면 문학보다는 평화상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는 반전 운동을 통해 월남전 종전을 앞당기고 민권 운동을 통해 흑백 차별 없는 세상이 한 걸음 가까이 오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상을 바꿔 받아야 할 사람은 또 하나 있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버락 오바마다. 노벨상 위원회는 무모한 이라크 침공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중동 평화를 어지럽힌 아들 부시가 미워 오바마에게 상을 줬지만 그 후 8년간 오바마가 평화를 한 일은 별로 없다.

별로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시리아의 독재자 아사드를 보고 물러나라고 하고 화학 무기 사용은 “빨간 선”이라고 하다가 막상 화학 무기를 사용하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 미국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시리아 내전을 격화시켰으며 러시아가 마음대로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지난 5년간 시리아 내전으로 죽은 사람만 50만이고 500만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들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익사 사고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유럽에는 극우 정당이 득세하는 등 꼴이 말이 아니다. 이것이 다 오바마 탓은 아니지만 그 책임의 일단을 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바마는 2008년 금융 위기로 고통 받던 젊은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미국인들을 “담대한 희망” 같은 멋진 문구로 위로했다. 노벨 문학상은 오바마에게, 평화상은 딜런에게 주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