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명예롭게 은퇴한 개

2016-10-17 (월)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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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왁(Newark) 공항에서 8년 동안 근무하고 은퇴한 개 ‘부르노’는 뉴저지 주 에섹스 카운티로부터 감사패와 훈장을 받았다.

이 명예로운 검은 개는 폭발물 탐지견으로 763회 출동하였고 24명의 외국 대통령, 18명의 수상들, 4명의 왕과 2명의 여왕 등 국빈들과 국내 정 부통령, 귀빈들의 출발 도착 시 공항을 지켰으며 여러 번 총기 폭발물을 사전에 발견하였다. 부르노는 폭발물 냄새만 나면 땅을 파고 벽을 긁어 주인에게 알리고 총기를 휴대한 사람에게는 사정없이 달려든다. 훈련의 결과라고는 하지만 경호견 탐지견 중에도 부르노만큼 자기 직무에 충성스러운 개는 드물다고 한다.

가장 좋은 친구는 친구를 위하여 희생을 각오하고 충성하는 신뢰와 헌신의 정신을 가진다. 아내가 남편을 믿지 못하고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희생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이미 그 사이는 금이 가고 있다. 사랑의 시금석은 충성심이다. 충성이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덕목처럼 들릴 수 있으나 관심과 사랑의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관심이 섬김으로, 섬김이 충성으로 이어지는 것이 사랑의 행로이다.

남에게 사랑의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다. 그의 육신은 죽어도 그의 관심과 보살핌은 금자탑이 되어 길이 남는다. 부모의 관심으로 아이들이 자라고, 남편의 관심이 곧 아내의 행복이 된다. 자식의 관심이 소위 효도이며 국민의 관심이 애국이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관심이 믿음이다. 가장 외로운 자는 관심 바깥에 있는 자이다.


개신교도를 ‘프로테스탄트’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 뜻을 ‘항거하는 자’로 오해하고 있는 이유는 영어의 ‘protest’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본래 라틴어의 ‘protestare’에서 나왔는데 무엇을 위하여 대표자 혹은 대변자가 된다는 뜻이다.

사실 항거하거나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자기가 대표자로 나서는 것은 책임이 수반되기 때문에 대단히 어렵다. 깊이 있는 사랑은 반드시 책임을 수반한다. 그래서 사랑의 고백은 신앙고백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책임을 짐으로 생각하지 말고 또 하나의 성취로 생각하면 보다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질 수 있다.

작은 책임을 성실히 마친 자에게 더 큰 일이 맡겨지는 것이 세상의 원칙이다. 그러기에 성공의 첫걸음은 오늘 나에게 주어진 작은 책임을 성의있게 마치는 것이다. 책임과 만족은 언제나 동행한다. 책임을 마친 후에 얻는 만족이 곧 행복이다.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학생에게 학교에 가는 즐거움은 없다.

예수의 재판 장면에서 빌라도가 사형을 언도하게 된 이유를 누가복음은 “저희의 소리가 이겼다”(누가복음 23:23)고 지적하였다. 예수를 죽이라고 소리치는 군중의 소리에 로마 상전에 대한 충성심에 오해가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재판관으로서의 바른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빌라도의 정치 생명은 실패작이었다. 큰 소리냐 작은 소리냐의 기로에서 우리는 소수의 작은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도 날마다 빌라도의 자리에 앉는다. 현실이냐 이상이냐? 편법이냐 진실이냐? 눈치 보기냐 정의이냐? 하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후자가 ‘좁은 문’이지만 예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원칙을 가르치셨고 자신도 그 길을 택하였다.

미국에서 운전하면 가끔 DETOUR 라는 표지판을 보게 된다. 도로공사 같은 것이 벌어져 길이 임시로 막혔으니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물론 돌아가는 것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썩 유쾌하지 못하다. 그러나 하이웨이로 나가려면 괴롭지만 돌아가야 한다. 인생의 여로에서도 돌아가는 것을 감수하는 삶이 지혜로운 자이다.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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