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래된 성당 지나 호수길과 바람길… 동화 같은 횡성여행

2016-10-07 (금) 횡성=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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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만 먹고 올 수 있나… 풍수원성당, 횡성호수길, 태기산 풍력발전단지까지

오래된 성당 지나 호수길과 바람길… 동화 같은 횡성여행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바람개비 위로 드넓은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다.

4만 5,000. 강원 횡성의 한우 사육두수다. 군 인구와 비슷하다. 우리지역 한우가 최고라고 자랑하는 곳은 많지만, 브랜드파워에서 어느 곳도 횡성을 넘지 못한다.

사실 맛에 아주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횡성한우와 타 지역 한우를 구별하기 불가능한데도 횡성한우를 최고로 치는 것은 엄격한 품질과 유통관리 덕분이다. 횡성축협이 수정란보급에서부터 사육 도축 유통까지 일괄적으로 관리한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횡성한우축제가 이달 3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횡성읍내 섬강 둔치에서 열린다. 먹거리마당에는 145m 길이의 ‘세계에서 가장 큰 셀프 식당’이 차려지고, 지역농산물 판매장도 열린다. 대형 한우풍선과 건초 놀이터가 설치되고, 밤에는 사진 찍기 좋게 LED조명이 불을 밝힌다.


횡성까지 가서 고기만 먹고 오기엔 뭔가 허전하다. 횡성읍까지는 중앙고속도로 횡성IC(에서 5분), 영동고속도로 새말IC(15분)와 원주IC(20분)가 가깝지만 국도를 이용하면 주변 관광지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산골마을에 아담한 고딕 건물, 풍수원성당
양평에서 횡성으로 이어지는 6번국도변 서원면 유현리에는 강원도 최초의 천주교회인 풍수원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교회의 시작은 신유박해를 피해 1803년 용인 사람 신태보가교인 40여명을 이끌고 정착하면서부터다. 1866년 병인박해 이후에는 천주교인들 사이에 안전한 곳으로 알려져 더욱 많은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이태 후에는 프랑스의 르메르 신부가 발령받아 집집마다 다니며 미사를 집전했고, 1900년에는 정규하 신부가 부임했다. 성당은 정 신부가 1905년에 설계하고 1907년에 완공했으니 올해 나이 109세다.

한적한 산골마을에 뾰족한 고딕양식 건물이 튀어 보일만한데도 규모가 아담해 이질적이지 않다. 앞마당에 준공 기념식수로 심은 2그루 느티나무가 이제는 첨탑과 높이가 엇비슷해졌다.

서울 약현성당, 완주 되재성당, 명동성당에 이어 한국에서는 4번째, 한국인 신부가 건축한 성당으로는 첫번째인 풍수원성당의 외형은 많은 이들이 판박이라고 부를 정도로 명동성당과 닮았다. 그러나 성당 안은 의자없이 지금도 마룻바닥을 유지하고 있어 한없이 소박하다.

성당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고돌아서기에 아쉽다면 성당 왼편 언덕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 예수의 고난을 석판에 새긴 판화가 이철수의 작품이 ‘십자가의 길’에 이어져 있다. 성당 뒤편에는 천주교회에서는 흔치 않은 유물관이 있다. 전시물은 교인들이 기증한 잊혀져 가는 전통 생활용품이 대부분이다.

▶향수 짙은 데칼코마니 횡성호수길
횡성읍내에서 19번 국도 홍천방향으로 약 10km를 달리면 횡성호 ‘망향의 동산’에 닿는다. 횡성호는 1997년 완공한 횡성댐의 담수호. 호수 둘레로 ‘횡성호수길’을 조성했는데, 그중에서도 5코스가 가장 인기다. 약5km 구간 중 절반은 물에 잠겨 끊어진 기존 도로와 성묘를 위해 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닦은 길이어서 평지나 다름없다. 호수길의 최대 매력은푸른 수면에 비친 데칼코마니 풍경.


호수가 넓지 않아 물결도 잔잔하다.

등고선처럼 산자락을 휘감는 길을 돌때마다 산 빛을 담은 물그림자가 새로운 풍경을 그린다.

출발점이자 종착점인‘망향의 동산’에 자리한 ‘화성의 옛터 전시관’엔수몰민들의 애잔함이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화전리 중금리 등 물에 잠긴 5개 마을 253세대 주민들의소소한 생활용품이 좁은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오래된 목기와 물레, 낡은 이발기와 흑백TV 등은 값나가는 물건은 아니지만, 두고 온 옛 고향을아련하게 되돌아보는 듯 진한 향수를 풍긴다.

▶바람의 길목 태기산 풍력발전단 지둔내에서 평창 봉평으로 이어지는6번 국도를 구불구불 오르면 횡성에서 가장 높은 태기산(1,258m) 자락이다. 횡성과 평창의 경계지점 양구두미재(980m)에서 정상까지는 약 4km.

고도차가 크지 않아 걸어도 힘들지 않은 길인데, 황송하게 차로도 오를수 있다.

꼭대기에 군부대가 있고 능선에는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선 까닭이다. 초입 절반은 포장이고 나머지 절반은비포장이다. 비포장 구간엔 일정 간격으로 물길을 깊게 파놓아 승용차는 턱을 넘기에 무리다.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곳마다 시야가 넓게 트여 굳이 꼭대기까지 오르지 않아도 된다. 높이 80m, 날개길이40m에 달하는 20기의 대형 바람개비가 ‘쉬익쉬익’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는 풍경도 장관이지만, 발 아래로펼쳐지는 풍광은 더욱 시원하다. 골짜기마다 좁은 들판에는 노랗게 벼가 익어가고, 첩첩이 포개진 백두대간 높고 낮은 산줄기가 장쾌하게 펼쳐진다. 바람의 길목이니만큼 날씨변화가 심하다. 한여름에도 서늘할 정도이니 바람막이 점퍼가 필수다.
오래된 성당 지나 호수길과 바람길… 동화 같은 횡성여행

가을이 깊어지면 파란 물빛도 화려한 단풍으로 변한다.


오래된 성당 지나 호수길과 바람길… 동화 같은 횡성여행

한국인 신부가 처음으로 건축한 풍수원성당.



choissoo@hankookilbo.com

<횡성=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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