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다가 좋아요 산이 좋아요?

2016-09-24 (토) 조은숙/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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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좋아요 산이 좋아요?” 이상하게 학생때 이런 질문을 자주 들었다. “인자는 물을 좋아하고 현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어디에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어 “산을 좋아합니다”하고 말하면서 그것이 멋있게 들릴 거라 생각했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별로 바닷가에 가본 적도 없으니 비교해서 말할 주제가 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런 대답을 반복하면서 나 자신도 그렇게 믿어버렸다.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도, 요즘 손주들과 바다에 갈 때도 그야말로 “위해서” 가야 된다는 생각으로 가곤 했다. 아이들 좋으라고, 즐기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땡볕 모래사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고역이었다.

몇주전 남편과 둘이 한 주일을 바닷가에서 보내게 되었다. Atlantic City가 멀지 않지만 거기는 마음이 내키지 않고, 골프채도 짐스러워 들고 가지 않았다. 꼼짝없이 바다에서 보내게 되었으니, 다음엔 쓸모가 없으리라 여겨 억울하지만, 그래도 beach 우산과 beach 의자는 필요하다싶어 투자를 결심하고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어느 상점에서 젊은 여자의 친절한 도움으로 가볍고 간편한 의자두개와 우산을 쉽게 고를 수 있었다. 아마도 한국음식이 먹고 싶고 한국이 가고 싶다는 퇴역공군의 격의 없는 호의에 그 투자가 더욱 의미 있게 생각되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그 투자로 나는 해변에서 보낸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 의자에 누워서 듣는 파도의 리듬이 가슴 설레었고, 파도 탈 용기도 내어보고 그게 퍽 신나는 일이라는 것도 뒤늦게 확인하면서 바닷가 며칠을 유감없이 즐기고 돌아왔다.

참 작은 것이 내가 일생동안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뒤집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옛날, 어린 삼남매를 데리고 beach에 가려면 그 준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것들을 끌고 모래사장을 걸어가는 것 또한 전쟁 치르듯 힘이 들었다. 그랬으니 편안한 의자와 우산만으로 가볍게 나갈 수 있고 쉽게 일어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귀찮고 힘든 나들이’라는 생각을 없애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의 전환. “바다는 별~로”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이왕 왔으니”라는 생각으로 바닷물에 발을 잠그니 시원해 좋았고, 몰려오는 파도에 두둥실 뜰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보니 “해보는 거야”, “부딪혀보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궁지들이 새 문을 열어준 옛 일들이 속속 생각났다. 컴퓨터를 배운 것도, 한타를 배운 것도, 심지어는 운전을 배운 것도 모두 그랬다. 최근에 또 다른 체험을 했다. 나는 큰 종교집회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구경꾼 같은 마음이 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끝나고 나면 뭔가 손해 본 느낌을 갖곤 했었다.

지난 주말 동북부성령대회에 참석하면서 그런 선입견을 벗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생각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나 자신 놀랐다. 말씀들이 머리로 들어와 거기에만 축적되곤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마음으로 직행하는 것이었다. 작은 피정집의 고요함과 다를 바 없이 하느님의 말씀들이 내 마음에 파고들고, 강당을 메운 신자들의 열기로 마음 속 소중한 곳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체험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 자세와 자신을 향한 도전적 신뢰를 갖고 산다면, 세상을 사는 게 훨씬 더 행복하리라는 체험적 깨달음이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또 늘 곱지만은 않은 남편/아내 그리고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의 전환을 하는 것은 우리의 결심에 달렸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긍정적 사랑의 자세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갈구하는 행복도 생각의 전환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새로운 희망으로 내 마음속에 기도가 된다.

<조은숙/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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