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잠든 얼굴들’

2016-09-22 (목) 09: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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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블라이( 1926-)

▶ 임혜신 옮김

오늘 밤, 첫 가을의 비가 나를 세상으로 불러 들인다
이제 아무도 원망하지 않기로 한다.
비는 홀로 있는 나를 보호한다.
글들은 책상 속으로 사라지고.
책상조차도 침몰해 가라앉고, 지성은 홀로
그 스스로의 고통과 이야기 하는 법을
배운다, 아주 천천히.
투덜거리는 천둥은 입안에 울려 퍼지는 선물.
또 하나의 선물은 아이의 얼굴이다
폭풍 속에서 집안을 둘러보았을 때
어두운 방에서 본 그 얼굴.
내 삶은 축복이다, 승리다, 빗속을 달리는 자동차 경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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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속에 비가 내린다. 먼 듯 가까운 듯 천둥을 치며 첫 가을의 비가 내린다. 내리는 빗줄기는 아늑한 물의 집을 지어 한 개인을 거친 세상으로부터 보호한다. 비는 개인적이고 또 감성적이다. 문학, 혹은 어떤 이론 같은 것들은 우리를 떠나 그것들만의 형이상학적 세상에서 형이상학적 지성으로 저들의 깊은 의문들을 어루만진다. 불평을 잊는 우리들은 알 수 없는 축복을 느낀다. 마냥 편안한 축복은 아니다. 이 축복은 빗속을 달리는 자동차 경주처럼 위험하고 뜨겁고 또 아늑한 살아있는 축복이다. 삶이라는 충실하고 단순한 축복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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