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사회에서 성희롱이 사라질 때까지

2016-09-12 (월) 캐롤라인 강/ 뉴욕가정상담소 이벤트&커뮤니케이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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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이 없어지려면 남자들의 교육이 우선 되어져야 한다.
남자들이 소리를 질렀다. 나이는 갓 13살, 태권도복을 입은 채 집을 나와 도장으로 걸어갔다. 도착지가 눈앞에 있는데 두려움에 저절로 몸이 움츠려 들었다. 길공사를 하는 다섯 남자가 그윽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태권도를 배워도 왜 움츠려 드는지…

아이는 15살 되던 해 태권도를 끊었다. 태권도 도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아 눈더미에서 찾다가 도장으로 돌아갔다. 도장을 닫으려 준비하는 사범님께 상황을 설명하자 사범님은 다시 한번 잘 찾아보라고 말했다. 아이는 가방이 없었고 입고있던 청자켓에는 주머니도 없어 휴대폰을 둘 곳이 없었다. 하지만 곧 아이의 가슴쪽이 만져졌고 아이는 실망을 했다. 충격도 아닌 남자에 대한 실망.

그 이후에도 아이는 계속해서 헷갈렸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오해를 한 게 아닌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맴돌때 아이는 자기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모에게 물어보니 이모가 어릴적 학교를 갈 때마다 옷핀을 갖고 다녔다고 한다. 남자 선생님들이 여학생들을 은근슬쩍 만질 때 콕 찌를 수 있는 하나의 무기였다고 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도 예전에 그런 경험이 있었다며 흔하다고 이야기 해주며 더욱 더 조심하라 했다.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했지만 들으시지 않으려고 했고 함께 태권도를 다녔던 오빠는 아예 모르는 눈치였다.
많은 여성들이 이런 비슷한 경험을 아는 사람에게서 아니면 모르는 사람에게서 적어도 한 두번 겪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제일 먼저 피해자를 의심하며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 하곤 한다. 옷을 잘못 입은 죄, 말이나 표정을 잘못 지은 죄, 술을 마신 죄, 혼자 밤낮으로 다녔다는 죄 등등을 들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빌미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한 많은 여자들은 침묵을 선택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 기대를 걸어보며 우리네 아들들을 더 잘 교육시킬 것이라고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 침묵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의 내면의 상처와 무거운 마음은 쉽게 가벼워지지는 않는 것 같다. 여성들의 이러한 경험들 인식하고 이해하려는 남성들이 많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사회 변화가 있지 않을까?

남성들에게 고한다. 엄마, 딸, 누나, 친구, 여동생, 여자친구, 아내에게 대화속에서 한 번 물어 보고 그들에겐 어떤 경험이 있었는지 판단없이 귀기울여 들어주기를..그리고 여성들에게도 고한다. 아버지, 아들, 오빠, 친구, 남동생, 남편, 남자친구에게 하기 힘든 이야기를 주저없이 먼저 들려주기를…

일상화 되어버린 행위, 성희롱이 남자 여자 모두가 참여하는 이슈로, 그리고 깨어있는 사회로. 뉴욕가정상담소가 없어지는 그 날까지.

<캐롤라인 강/ 뉴욕가정상담소 이벤트&커뮤니케이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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