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동과 행복

2016-09-06 (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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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에 일어나 오늘도 열심히 살도록 기도한다. 만일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죽는다면 그래도 오늘은 훌륭한 날이었을 것이다. 아담이 받은 저주 때문에 나는 감사한다. 일도 하지 않고 먹고 살던 인간이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잘 된 일인가! 열심히 일하며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좋은 예배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정성과 사랑의 창조자이시다. 그대의 일도 정성과 사랑이 들어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영원한 열매가 될 것이다. 나의 확실한 신념 하나는 일은 하나님께서 주셨고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내 직업을 가졌다는 것이다. 직업을 하늘이 주신 기쁨으로 깨달을 때까지 그대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직장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대는 문제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지루함을 느낀다면 문제는 깊어가고 있다. 자기 비하(卑下)를 느낀다면 문제는 이미 깊어졌다. 일 때문에 건강까지 나빠졌다면 몸뿐이 아니라 마음까지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땀 흘리지 않는 곳이 청국일까? 땀의 기쁨과 만족, 땀 흘리는 행복을 아는 사람은 그런 청국을 연상하기 어렵다. 천국에 가서도 나는 많은 땀을 흘리기를 기대한다.


슬픔이 당신을 삼킬 때 일하라. 실망의 늪에 빠질 때도 일하라. 실패의 쓴 잔을 마실 때도 일하라. 그대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거든 그대는 늘 기뻐해도 된다. 우리가 일 하지 않는 한 신은 아무 것도 안 하신다. 신은 대리석을 산 속에 숨겨 두셨으나 성전을 만들지는 않으셨다. 쇠를 산에 묻어 두셨으나 바늘을 만들지는 않으셨다. 신의 재료를 가지고 인간이 연구하고 발명하고 사용하도록 내버려 두셨다.

존 웨슬리(감리교의 창시자)의 놀라운 정력을 보라. 그는 40년 동안 하루 평균 250마일을 말을 타고 전도여행을 하였다. 그는 평생에 4만 회의 설교를 하고, 400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10개 국 언어에 능통하였다. 83세 때 그는 “이젠 하루 15시간의 집필이 불가능하군”하고 고백하였다. 60년 동안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났고, 50년 동안 매일 새벽 5시에는 설교를 해 왔다. 그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었는데 그 대부분은 말을 타고 여행하며 읽었다. 정말 열심히 일한 귀감이다.

사실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서 받는 성취도이다. 성취감은 만족으로 이어진다. 다소 일이 많아도 자기 일의 중요성이나 의미를 느끼면 성취감이 있기 때문에 의욕과 정열을 준다. 직장생활의 좌절감은 보수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다. 따라서 수입을 따라 자기의 장래나 직장을 결정하는 것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어리석은 결정이다.

한국인이 열심히 일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미국사회가 공인하고 있다. 그러나 시회 건설면에 있어서 열심을 내는 동기의 질적 문제가 다루어진다. 불속에 들어가 아들을 건져내는 아버지는 혈육의 사랑이라는 강한 동기가 있다. 아프리카 원시림에 들어가 흑인 치료에 투신한 슈바이처는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동기보다는 더 넓고 고귀한 동기가 그 행위의 추진력이 되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는 같지만 그 동기에 있어서 이기적 동기부터 인류를 위하는 동기까지 그 중간에 질적 차이가 많다. 수입을 위하여 일한다는 작업관은 보람을 못 준다는 뜻에서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평생 목사의 생활을 한 필자가 미국에 이민 와서(1972년) 첫 6개월 동안 뉴저지 남부에 있는 식품공장에서 막노동에 종사한 일이 있는데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땀과 먼지에 뒤범벅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일어설 힘도 없었다. 그래서 노동자의 고달픔을 뼈속 깊이 체험하였다. 초창기 이민자치고 노동의 경험을 안 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또 다시 노동절(Labor-Day)을 맞아 노동자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감사하자.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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