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못다핀 꽃, 지지않는 꽃

2016-08-31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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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못한다. 차라리 죽여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정옥순 할머니가 토해내는 생생한 증언이다. 일본 작가 이토 가카시가 위안부 실상을 알기 위해 취재한 많은 위안부 가운데 한명인 정씨가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나이는 14살.

그녀는 1933년 6월3일 부모가 밭에 간 사이 우물가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갔다고 한다. 가보니14세부터 20세 미만의 앳된 소녀 400명이 있었는데, 일본군은 하루 100명씩 상대 할 수 없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한다. 소녀들이 나가자 줄을 선 처녀들의 옷을 벗기고 머리채를 휘어잡고 몸을 한 바퀴 공중으로 돌리다가 수백 개의 못이 박힌 판자위에 내동댕이쳤다는 것이다. 그러자 온몸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면서 죽은 소녀가 무려 15명. 일본군이 대장에게 “이 시체를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묻자 대장은 ”땅도 아깝고 흙도 아까우니 당장 변소에 쳐 넣으라.“고 했다 한다.

“소녀들이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통곡을 하자 이들을 철봉 뒤에 매달아 가시 같은 고문기계로 온몸을 찔렀다. 그렇게 죽어간 쳐녀들이 또 수 없이 많다. 나는 맨 마지막에 고문을 당해서 겨우 죽음을 면했다.” 이처럼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갈기갈기 찢기는 만행을 당하고도 피해자들은 한국사회 정서상 수치감 때문에 사실을 대부분 감추고 평생 아무 말도 못하고 죽어간다.


이러한 사실에 일본의 전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는 “일본은 사과하고 또 사과해야 한다.”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성숙한 지도자의 자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아베정권은 이 끔찍한 만행에 사죄는커녕, 또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법안을 바꾸고 최근 전쟁훈련에 돌입하는 뻔뻔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이 전쟁이란 미명하에 또 얼마나 많은 꽃다운 처녀들을 데려다 잔혹한 짓을 저지르려하는가.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제 해방은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다.” “수십 만에 이르는 못다 핀 처녀들의 피와 눈물, 통곡이 범벅이 되어 대지를 적시고 바다로 흘러들어갔던 사실을 하늘은 알고 있을 것이다. 땅이 갈라지고 바다가 요동쳐도 회개치 않고 그 의미를 모르는 저 짐승들은 하늘로부터 얼마나 더 큰 대답을 들으려고 하는가?“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가해국인 일본은 사실을 인정, 사죄하고 위안부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확실하게 배상하라.”고 부르짖는다.

어떤 이는 “입에 칼을 물고 죽어도 분이 안 풀린다. 만고의 역적들을 그대로 두어서 되겠는가. 말할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치가 떨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잔악한 일본군은 나의 인생을 망쳐놓았다. 나는 시집도 못가고 한평생 혼자 아픔과 고통을 삭이면서 비통하게 살았다. 가해자중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이들은 당장 달려가서 그들을 물어뜯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국정부 산하 ‘화해 치유재단’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회복, 상처치유를 명목으로 일본정부로부터 피해보상금 10억 엔을 받아 생존자 일인당 1억 원, 사망자 유족에게는 2,000만원씩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분개하며 “누가 언제 돈 달라고 했느냐? 우리는 돈 요구한 적 없다.” 일축하고, 뜻있는 국민들은 “꽃다운 처녀들이 성노예로 산 것만도 원통한데, 나라의 자존심을 돈 몇 푼 받고 팔아먹으려는가. 말도 안 된다. 라며 크게 분노하고 있다. 꽃다운 처녀들이 채 피지도 못하고 한평생 씻을 수 없는 만행을 당했는데 돈 1억 만으로 과연 해결될 일인가.

네델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 핍박한 대가로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독일이 유대인에게 계속 사죄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일본은 자국이 저지른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끝없이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피해 여성들의 외침과 분노는 멈추지 않고 계속 메아리쳐 일본의 온 지축과 바다를 흔들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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