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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묻고, 청진기는 소통이다 CT·MRI가 대신할 수 없는$

2016-08-23 (화)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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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진기 발명 200년만에 박물관행 위기, 환자들 첨단의료기기 더 신뢰 폐·심장 이상 발견에 유용

▶ 의사-환자 교감에도 중요 역할 “ 의사의 기본·숭고한 의료행위”

그 도구는 처음에는 그저 종이를 둘둘만 것이었다. 길이는 한 자쯤 됐는데, 질 나쁜 종이를 세 장 겹쳐 힘껏 말아 풀로 붙이고 양쪽 끝은 줄로 매끄럽게 다듬었다. 이렇게 하고 보니 지름이 불과 3~4㎜쯤 되는 가느다란 관이 됐다. 호흡음을 듣기 위해서는 가운데 빈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간단한 도구가 심장소리를 듣는 데 최고다. 나는 ‘청진기’(원어로는 가슴검사기구)라는 이름을 생각해냈는데 용도에 가장 잘 어울렸다. 우리는 이 청진기가 흉곽 진찰 외에 다른 용도로 쓰이길 희망한다. (라에넥, ‘간접 청진에 관한 연구’ 중)
의사에게 필수적인 의료도구였던 청진기가 의료현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몰렸다. 1816년프랑스 의사 라에넥이 ‘타진’·‘촉진’· ‘직접청진’등 기존 진찰법을 탈피해 더 객관적으로 환자를 진찰하려고 만든 청진기가 발명 200년을 맞아 박물관에 전시될 운명에 처했다.

청진기는 의사에게 ‘분신’같은 존재였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내과의사 특히 호흡기내과 의사가 된 것은 순전히 청진기 때문”이라며 “청진기를 사용하지 않는 의사는 왠지 의사 같지 않다는 생각에 내과를 택했고, 청진기를 자주 사용하는 게 마음에 들어 호흡기 내과에 끌렸다”고 말했다.

청진기가 용도 폐기 위기에 몰린 것은 X선ㆍ컴퓨터단층촬영(CT)ㆍ자기공명영상(MRI)ㆍ심장초음파 등 첨단 의료기기 때문이다. 청진기로 환자 소리를 듣는 것보다 이들 기기를 이용한 검사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해 청진기 진료가 의료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유형준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심장초음파 등 성능이 뛰어난 의료기기가 즐비한데 굳이 청진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청진기는 의료도구가 아닌 장식품으로전락했다”고 말했다.


‘성추행’ 오해… 병원이익 위해 외면
청진기 퇴출은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다.

최천웅 강동경희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과거에는 외래 진찰 때 청진이 당연했지만 최근거부 환자가 많아졌다”면서 “일부 젊은 여성환자는 상의를 올리고 청진 자체를 성추행으로 여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청진자체를 거부하고 불쾌감을 표하는 환자를 몇번 만나게 되면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청진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처럼 임상실습이 쉽지 않는 것도 문제다.

최 교수는 “과거에는 입원환자들을 대상으로 의대생들이 청진기 실습을 할 수 있었지만 최근 환자들이 임상실습을 꺼려 실습자체가 어렵다”면서 “이렇다 보니 청진기 사용 교육이 의대의 필수과정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첨단 검사결과만 신뢰하는 환자의 인식도 청진기 사용의 걸림돌이다. 임 교수는 “요즘 환자들은 환자 이야기를 꼼꼼히 듣고, 환자 몸의 소리를 차분히 듣는 것보다 여러 검사를 의뢰하는 것이 빠르고 정확하다고 여긴다”면서 “청진보다 CT 검사 결과 여부를 묻는 환자에게 청진기를 댈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청진하는 것보다 검사의뢰를 많이 하는 게 병원 경영에 도움되기에 청진기 진료는그야말로 ‘잉여진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진기, 의사 환자 간 최고 소통도구”
정말 청진기는 박물관으로 가야 할까.“ 200년 동안 의사들이 느꼈던 감동과 수많은 정보를 줄 순 없어도 청진기는 앞으로도 박물관 아닌 의료현장에서 사용될 것”이라고 의사들은 말했다. 청진기 활용가치를 높게 보는 이유는 청진기가 의사ㆍ환자 간 소통 도구이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환자 중에는 의사가 환자 얼굴한번 쳐다보지 않고 처방한다고 불만을 표하는 이가 많다”면서 “의사가 청진기를 통해 환자의 심장ㆍ폐 소리를 듣는 것은 단순한 진료가 아닌 소통행위”라고 했다. 한희진 고려대 의대 의인문학교실 교수는 “청진기는 의사와 환자 관계 형성에 도움을 줄것”이라면서 “첨단 의료기기에 의존해 의사가 청진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기계에 자신의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임 교수는 “기계가인간의 귀를 확실히 이겼지만 의사는 늘 청진기를 손에 들고 환자소리를 들어야 의사와 환자가 서로 공감하고 신뢰할 수 있다”면서 “알파고가 체스, 바둑 1인자를 물리쳤지만 그래도 인간은 체스와 바둑을 통해 교감하는 것과 같은이치”라고 말했다. 발명자 라에넥이 청진기가 흉곽 진찰 외 다른 용도로 쓰이기를 희망한지 200년 만에 이뤄지고 있다.

환자와 교감ㆍ소통뿐 아니라 의료도구로 청진기는 효용가치가 충분하다. 유 교수는 “X선에서 발견하지 못한 폐에 물이 차거나 이상 심장박동도 청진기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임교수는 “입원 폐렴환자에게 매일 CT 촬영을권유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청진으로 환자상태를 매일 쉽고 빠르게 관찰할 수 있다”고말했다. 그는 “호흡기내과 순환기내과 흉부외과 소아과 등에서는 청진기가 여전히 활용될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청진기 사용은 누가 뭐래도 의사의 기본”이라면서“ 의료 기본이 무너지고 있는것 같아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교실 교수는 “숙련된 의사들이 청진기 하나로 수많은 질병을 정확히 집어내는 것 자체가 숭고한 의료행위”라면서 “청진기로 진단할 수 있는 병을 고가 첨단장비로 진단하는 것은 공연한 낭비”라고 꼬집었다. 황 교수는 “청진기에는 현대의학사가 담겨 있고, 청진기를 대하는 의사들의 태도에서 그 사회의료의 특성도 가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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