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잘못된 인센티브

2016-08-23 (화) 09:33:56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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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미국을 강타한 대공황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고통을 줬지만 사회적 약자에 특히 가혹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35년의 ‘소셜 시큐리티 법’이다. 이 법은 노인들이 최저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였지만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보조 규정도 있었다. ‘부양 자녀 보조금’이란 것이 그것이다.

이 제도는 의도는 좋았지만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된다. 이 보조금 지급 대상은 본인도 직업이 없고 가족을 부양할 남편도 없이 혼자 자녀들을 키워야 할 미혼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과 일은 안 할수록, 자녀는 많을수록 많은 보조금 혜택을 받는 잘못된 인센티브를 주게 된 것이다.

1960년대까지 흑인 24%, 백인 3%이던 미혼모의 사생아 비율은 1990년대에는 흑인 64%, 백인 18%로 급증했다. 물론 이런 변화가 웰페어 제도 때문 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제도가 일조했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혼모 가정에서 자란 자녀가 양부모 가정 자녀보다 학업 능력과 사회성이 떨어지고 취업과 소득 수준도 낮으며 범죄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이 제도가 생긴 지 수십 년 동안 연방 정부가 수천억 달러를 쏟아 부었음에도 이들 빈곤 가정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자식이 대를 물려 웰페어를 타는 사태가 벌어지자 이를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이 마련됐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1996년의 ‘웰페어 개혁법’이다.

웰페어를 탈 수 있는 연한을 제한하고 웰페어 지급 조건으로 구직과 재취업 훈련 이수를 의무화한 이 법은 시행 당시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좌파는 이 법이 힘없는 미혼모와 그 자녀들을 길거리로 내몰 것이라 주장한 반면 우파는 알자리야 말로 최선의 복지라며 ‘웰페어 폐인’의 양산을 막기 위한 필수적 조치라 맞섰다.

22일은 빌 클린턴이 “이로써 우리가 알던 웰페어는 끝났다”라 외치며 이 법안에 서명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이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사실상 끝났다. 올 대선에 나선 후보 중 누구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1994년 1,420만에 달하던 수혜자 수는 2000년 630만으로 줄었고 그 후 대불황으로 다소 늘기는 했지만 아직도 20년 전의 절반 수준이다.

‘웰페어 개혁법’이 제정된 지 13년 뒤 또 다른 민주당 대통령은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회 개혁법을 탄생시켰다. 무보험자를 없애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소위 ‘오바마케어법’이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 3년 만에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미 최대 보험사인 유나이티드헬스에 이어 랭킹 3위의 애트나가 사실상 오바마 의료 보험 시장에서 발을 빼기로 한 것이다. 아직 남아 있는 보험사들은 오바마케어 평균 보험료를 내년 24% 인상할 계획이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앞 다퉈 퇴장하고 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현 요금 체계로는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케어는 과거 혼자서 보험에 들 수 없는 기존 병력자를 무조건 보험사들이 받도록 했다. 그러고도 보험사가 이익을 보려면 병원에 가지 않는 건강한 젊은이들이 많이 가입해야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미가입자에 대한 벌금이다. 그러나 가장 보험료가 싼 브론즈 플랜의 경우 4인 가족의 1년 디덕터블이 1만1,000 달러나 된다. 보험료는 보험료대로 내고 막상 아프면 대부분 자기 돈으로 또 치료비를 내야 하는 셈이다.

오바마케어에 가입할 수 있는 기간은 연말 연초로 정해져 있지만 결혼이나 출산, 실직 등 개인적 사유가 있을 때는 언제든지 가입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이 있다. 젊은 층으로서는 ‘쓰지도 않을 보험을 미리 들기보다 아프면 그 때 들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오바마케어 가입자 중 18~34세 비율은 예상치인 40%에 훨씬 못 미치는 28%에 불과하고 가입자 대부분이 병원에 자주 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 비율이 높아질수록 적자 폭은 커질 것이고 보험료는 오를 것이며 젊은 층의 이탈은 가속화될 것이다.

웰페어 개혁이 공화 민주 양당의 합의 하에 이뤄진 것과는 달리 오바마케어는 단 한 사람의 공화당원도 동참하지 않았다. 차기 대통령이 유력시되는 힐러리가 이런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풀지 궁금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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