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더위가 쉰다!’

2016-08-22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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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 와 있는 계절이다. 더위가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할 때다. 한 낮의 무더위는 여전하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서서히 무더위가 물러가고 있다. 어느새 올 여름도 끝자락에 온 셈이다.
내일(23일)은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다.

처서의 한자 처(處)는 ‘때’와 ‘곳’의 의미다. 서(暑)란 글자는 ‘덥다’는 뜻이다. 그러니 처서는 ‘더운 때’나 ‘더운 곳’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처라는 글자의 의미에는 ‘머무르다’와 ‘쉬다’란 뜻이 있다. 서라는 글자에는 여름이란 의미도 있다. 그러니 처서는 ‘여름이 머무른다’, ‘더위가 쉰다’는 뜻이다. 바로 여름의 성숙은 정체되고 이제 꺾이기 시작해 간다는 뜻인 것이다.

처서는 절기로는 14번째다.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와 농작물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 사이에 드는 절기다. 처서 무렵에는 여름 내 사람들을 괴롭히던 무더위와 열대야가 한 풀 꺾인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모기의 극성도 사라진다. 그래서 한여름 땡볕과 모기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은 처서를 기다리며 풍요로운 가을을 꿈꾼다.

이 무렵엔 밤에 귀뚜라미 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한다. 해맑은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뭉게구름도 아름다운 시기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온다’는 말이 생긴 이유다

밭에서는 옥수수, 조와 수수 등 곡식들이 알알이 영글어 간다. 밤, 복숭아, 사과, 배 등 과일들도 익어간다. 붉게 익은 고추를 따서 뜨거운 햇볕에 말리기에 좋은 때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햇살 좋고, 동남풍 부는 날에는 남자들은 떼 지어 산 위에 올라가 바지춤을 내리고 하체를 바람과 햇볕에 노출시켜 말리는 거풍을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의 부인들과 선비들은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음지에 말리는 음건이나 햇볕에 말리는 포쇄를 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처서절기는 그동안 무더위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삶의 여유와 낭만을 찾아가는 시기였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앞두고 수확을 위해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졌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8월 중순께 여름휴가가 절정을 이루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여름의 끝자락이요 가을의 문턱이다. 여전히 낮 기온은 화씨 80도를 웃돈다. 한낮의 태양빛은 따가워 머리가 벗겨질 듯하다. 그래도 조금은 달라졌다. 무덥다가도 그늘에 들면 시원해졌다. 아침저녁으로 더욱 선선해진 느낌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다. 따가운 햇볕도 누그러졌다. 숨이 턱 막히는 더운 바람이 숨통이 탁 트이는 신선한 바람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하늘은 높아졌고 구름모양도 완연히 달라졌다. 그러다보니 덥다는 아우성이 쏙들어갔다. 열대야의 시달림도 사라졌다. 여름의 후유증에서 벗어날 때가 된 셈이다.

이제부터 더위는 점점 사그라진다. 태양도 더 이상 무더위를 만들만큼 강하지 않다. 갈수록 길이마저 짧아지고 있다. 일기예보도 앞으로 큰 더위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미 바람의 계절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덕분에 계절의 바뀜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체감한다. 참으로 시원한 바람처럼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어느 덧 가을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온 듯하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가을은 참 좋은 계절이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겸손이 있어 좋다. 결실의 계절답게 거둬들이는 기쁨이 있어서 더욱 좋다. 무엇보다도 하늘이 내려준 은혜에 감사할 수 있으니 더 더욱 좋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이 되고 싶은 가을이 오고 있다. 우리 모두가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감사의 가을이 되기를 기원한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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