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립 사도는 떠났지만 그가 선포한 복음은 울려퍼져
▶ 하나님 책망 들었던 라오디게아교회 유적 화려하게 잔존
라오디게아 지역 신전 및 유물 박물관. 멀리 왼쪽에 교회터가 있으며 필자 강혜성 목사가 서있다.
이번 터키-그리스여행 중 소아시아 여러 교회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중 라오디게아지역과 그 주변 파묵칼레온천은 특히 인상이 깊은 곳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3:17)라는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던 라오디게아교회. 과연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지역의 유적은 화려하게 남아있었고, 루카스밸리의 중앙에 화려한 건물과 도로 및 황제의 신전자리들이 잘 복원되어 가고있었다.
라오디게아지역은 처음에 디오스폴리스, 그리고 후에 로아스라고 불리었는데, 기원전 250년경 셀레우코스왕조의 안티우크스 2세에 의해 재건되어 그 아내 라오디케의 이름을 따라 라오디케아로 불려지게 되었다. 에베소에서 수리아까지 연결되는 대로상에 위치해 있어서 기원전 133년 이후부터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면서 번성, 기름진 루커스계곡에 목양과 면화 재배가 많아 로마상인들이 입고 다녔던 흰옷들이 거의 이곳에서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히에라폴리스에서 오는 뜨거운 온천물이 9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으로 오면 미지근해지고, 골로새 뒷산에서 흐르는 차가운 물도 루커스평야를 거쳐 이곳에 이르면 미지근해지는데다 모사공장의 폐수,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들의 피와 오물들이 온천물과 뒤섞여 마시는 사람들이 구토를 할 정도였다. 결국 이런 상황에 익숙한 당시의 라오디게아교인들을 향해 요한계시록 3:15에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는 말씀으로 저들을 책망하신다.
라오디게아의 복음은 에베소에서 바울이 사역할 당시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회는 바울의 제자이며 골로새에 있던 에바브라가 개척한 것이요, 라오디게아의 눔바의 도움을 많이받았다. (골 4:12-15) 눔바는 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 라오디게아교회의 감독이 된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에베소처럼 악한자들도, 자칭 사도라 하는자도, 그리고 서머나교회처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핍박이나 로마황제의 심한 박해도 별로 없었다. 또한 버가모나두아디라처럼 발람과 이세벨의 교훈을 따라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는 일이나, 빌라델비아교회 처럼 거짓말하는 자들도 없었다. 그런데 사데교회와 같이 살아 있 는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교회라고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다.
라오디게아에서 남서쪽으로 보면 1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골로새지역이 위치해 있는 언덕이 있다. 계시록 소아시아 7교회에 포함 되지는 않지만, 골로새는 당시 비시디아 안디옥, 사데, 버가모로 통하는 대로의 교차점에있어 동방과 서방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라오디게 아히에라 폴리스와 함께 당시 로마의 군사적 요충지요, 상업과 휴양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로마의 통치기간 동안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가 상업의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자 상대적으로 골로새는 작은 성읍으로 전락했다. 지금은 복원중이라 접근할 수 없었으나,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 (골1”2)을 생각하면서 멀리서나마 언덕이라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골로새교회는 3차전도여행중 에베소에서 바울의 전도를 통해 믿게된 골로새출신에 바브라가 세운교회로 (골1:7), 빌레몬의 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던 가정교회다(몬 1:2). 에바브라가 처음 복음을 전할당시 골로새에는유대인, 헬라인, 브루기아인등 다양한 인종이 거주해 살고있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로 인해 교회가 성장해 갈즈음, 율법주의자들과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들이 난립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이단사상 곧, 영지주의자들과 율볍주의자들의 주장함이 구원에 무익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
골로새 남쪽 약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호나즈다기 (카드모스산) 산이 2750미터 높이로 솟아있는데, 이산의 눈이 녹아 골로새의 하천들에 깨끗하고 차가운 물을 공급 해주고있다. 골로새 교인들은 이 차가운물을 마시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단으로부터 바른신앙을 지키기위해 노력 했을거라 생각해 본다. 라오디게아에서 다시 고개를 180도 돌리면 멀리 산 언덕중턱에 펼쳐진 히에라폴리스지역을 볼 수있다. 라오디게아로부터 약 9 km 떨어져있는 루카스계곡의 언덕위에 세워진 도시인데, 산밑에 솜털처럼 하얀부분으로 덮여져 있는 넓은 언덕지역이 흡사 목화송이와 같다하여 파묵칼레라고 불리워진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들은 이곳을 성스러운 도시 (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는데, 당시 15만명이 거주하는 대도시였으며, 15,000석규모의 원형극장이 잘 복원되어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2000년전 이런원형극장에서 연극이나 경기를 관람하고, 온천에 몸을 담그며 루키스밸리를 경치를 감상하던 당시인들의여유있는 삶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원형극장에서 나와 온천지역으로 이동해 가는 길 위쪽에는‘빌립사도의 무덤과 기념교회’가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중 하나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것이 나올수 있겠냐?”는 나 다나엘에게“와보라” (요1:46) 는 말로 제자의 길로 인도한 사도 빌립은 후에 그의 아들과 함께 이곳에 히에라볼리교회를 세웠고, 복음을 전하다가 우상 숭배자들에게 매를맞고 감옥에 갇혀서 순교하게 된다.
멀리 루카스밸리 평원이 한 눈에들어오고 바로밑 로마의 신전및 원형경기장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 가장 높은 곳에, 거의 손상 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빌립사도의 무덤과 아직도 웅장하게 남아있는 그의 기념교회 구조물로 보아, 비록 빌립사도는 그들 곁을 떠났지만, 그가 선포한 복음은 이후 그의 후예들을 통해 얼마나 힘차게 수세기동안 그 지역에 울려퍼졌을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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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성 목사(리빙스턴 연합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