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황윤리와 성범죄

2016-06-30 (목) 김근영 목사
크게 작게
히틀러 암살을 기획하다 사형된 본 회퍼 목사로부터 기원된, 보편적 윤리규범을 부정하면서 상황에 따라 자신의 윤리적 당위성이나 정당성을 합리화 하는 것이 상황윤리이다. 그래서 성윤리에도 상황윤리를 얼마든지 편리하게 도입시킬 수 있다.

미국은 1960년 이전까지 기독교윤리가 통용되었다. 하지만 케네디대통령 이후, 자율이 강조돼 10대들의 성도덕이 문란해진 그 당시에도 상황윤리를 적용시키고 있었다. 한국도 이조때부터 유교의 윤리로 강조하던 ‘남녀칠세부동석’ 즉 성이 이미 어려서부터 커텐 속에 갇혀 오랫동안 억압당하고 있었다.

해방 후부터 서구문물이 들어오면서 성도 개방되기 시작했다. ‘자유부인’이란 소설도 그때 나온 것이고, 가수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등장에 이어 서구의 개방된 여성 복식이 여과 없이 유행되었다.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동시, 억압된 밤길이 열리고 갇혀 있던 성도 활개를 치고 개방되기 시작했다. 더욱이 오랫동안 힘없는 한국부인들의 편이 되었던 간통죄까지도 폐기되었다.


정신 나간 히틀러가 사람들을 태우고 벼랑길로 가는 것이나 술에 만취된 운전사가 사람을 태우고 운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젠 양심도 다 마비되었고 악한 일도 자기합리화 시키고 성범죄도 더 이상 죄악시하지 않고 당연시 되어 버렸다. 자기 판단이 옳으면 악도 악이 아니다. 이런 왜곡된 상황윤리에 따라 다 정당화 되어 못할 것이 없게 되었다.

돈이면 다 되고, 권력이면 안 될 것이 없는 시대다. 성매매, 성상납은 예사가 돼버렸다. 도의적인 책임이라도 져야 할 한국교회에 ‘정말 한국에 교회가 있는가?’ 물으면 “세계에서 제일 크고 부흥한 교회가 7만이나 된다”고 자신 있게 답변한다.

그러면 흑산도에도 교회가 있는가? 자기 자녀를 교육시키기 위해 섬마을로 오신 스승을 성추행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한동안 믿지를 못했다. 너무나도 부끄럽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흑산도뿐일까. 울릉도, 거제도, 제주도, 한반도 전체에 감염되었을 이 전염병을 방역당국은 대체 어찌 할 것인가. 또 법정에서 그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도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들이 단지 술에 취해 한 짓이니 관대한 판결 부탁드립니다” 하면 다 봐주고 지나갈 것인가. 술에는 유독 관대한 한국법정이다. 본 훼퍼의 상황윤리란 이런 한국 법정에서나 유효한 윤리이다. 본 훼퍼 목사는 이번 흑산도사건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김근영 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