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뒤숭숭한 세상

2016-06-18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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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뭔가 뒤숭숭하다. 동료에게 이 말을 했더니 언제는 뒤숭숭하지 않았냐고 반문을 한다. 그래, 세상은 항상 그래 왔던가. 세상은 뒤숭숭한 대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카오스처럼 돌아가는데 세상을 뒤숭숭하게 보는 자신에게 오히려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허나, 70평생 가까이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정신이 맑은 건 처음이다.

혼돈(카오스)의 세상, 무엇이 우릴 뒤숭숭하게 하는지 좀 짚어보아야겠다. 우선 플로리다 올랜도 사건이다. 지난 12일 플로리다 펄스의 성소수자(게이)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진 총기테러는 49명의 사망자와 50여명의 부상자가 나온 미역사상 최악의 총기사건이 된다. 경찰의 늑장대응으로 사망자가 더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범인은 성소수자를 경멸해온 아프카니스탄계 미국인 오마르 마틴(29). 무슬림으로 뉴욕에서 태어났고 그는 자신을 IS(이슬람국가)에 충성맹세를 했다고 전했으나 연관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FBI는 마틴을 수년전부터 테러 단체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 용의 선상에 올려놓았었다. 조금만 더 유심히 관찰했다면 좋았을 걸.


관상을 보거나 인물 됨됨이를 보아도 도저히 대통령감이라 여겨지지 않는 트럼프가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거다. 정말 카오스다. 그러나 현실이다. 부동산의 졸부로 떵떵거리던 그는 수없는 파산을 통해 세금을 내지 않는 교묘한 수법으로 미국을 우롱했고 지금도 미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백인 중에서도 저소득층 사람들과 또 소외돼 있는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한다. 그는 세금회피 등을 통해 수십억 달러를 가진 부자인데 반해, 막상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래, 그 가난을 없애준다는 건가. 천만의 말씀. 트럼프를 따르는 사람들은 무언가에 현혹된 것이 분명하나 무엇인가가 있다. 혼돈 그 자체다.

영국이 오는 23일 유럽연합(EU)의 탈퇴와 잔류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현재 지지도는 찬성 50%, 반대 50%의 박빙. 1958년 시초가 되어 현재 28개국이 가입된 유럽연합은 미국과 중국, 일본을 견제해온 말 그대로 유럽연합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럽연합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영국의 탈퇴가 현실화된다면? 카오스가 된다.

난민들. 지금도 수없이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가난하고 먹을 것 없는 모국을 버리고 먹을 것 많고 살기 좋은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배를 너무 많이 탔다가 배가 뒤집혀 물에 빠져서 죽는 거다. 유엔에서 밝힌 전 세계의 난민 수는 2014년 말 5,900만 명을 넘었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난민들이 있다. 난민문제 완전혼돈이다.

환경문제는 또 어떤가. 수천, 수억만 대의 자동차와 공장에서 뿜어대는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 등의 방출인 온난화를 통해 지구는 점점 더 더워지고 있다. 더움에 빠져버린 지구는 북극과 남극의 얼음산들이 녹아져 바다수위가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다. 앞으로 100년 안에 뉴욕의 맨하탄이 바다에 잠길 수도 있단다. 그래도 속수무책.

점점 더 벌어져만 가는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의 카오스는 전 세계를 대공허로 몰아가지만 이걸 누가 해결하랴.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된 것도 빈익빈에 속한 사람들이 토해낸 울분의 단면일 수도 있다. 이건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국가에도 해당된다. 난민들이 왜 생기는가. 가난한 나라의 표출이다.

올랜도 테러, 트럼프, 영국, 난민문제, 환경문제, 빈익빈 부익부, 등등. 이렇듯 뒤숭숭한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그러나 태양은 내일도 뜰 것이다. 동료가 말했듯이 언제는 뒤숭숭한 때가 아니었나. 혼돈(Chaos•대 공허)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은 비추리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지 않을까.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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