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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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109) 미국의 산업화 시대 (1865-1900) ⑫

2016-06-17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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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erside Church

5대 James A. Forbes 목사 (1989-2007) 는 “The best black pastor” (흑인 Ebony 잡지), “One of the 12 most effective English-language preachers”(Newsweek)라는 평판을 들은 첫 흑인목사이었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에 극렬히 반대하였으며 넬슨 만델라와 함께 Riverside Church 에서 예배를 드렸다. 미국의 소득불균형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 Forbes 목사는 은퇴후 “Distinguished Senior Minister Emeritus” 라고 불리워졌다.

6대 Brad R. Braxton 목사 (2008) 는 University of Virginia 를 졸업하고 옥스포드 대학교에 Rhodes Scholar 로 가서 공부했던 흑인목사이었다. Braxton 목사가 취임한후 그의 목회철학이나 예배방식이 Riverside Church 전통과는 다르다는 일부 교인들의 불만이 조금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Braxton 목사의 연봉을 포함한 총예우가 지나치다는 오해 들도 생겨서 교회의 불화가 표면화되기 시작하자 Braxton 목사는 취임후 일년이 되기 전에 사표를 제출하였다.


교회가 심각히 분열될 수 있는 위기까지 가지않고 모든 관계자들이 현명하게 결말을 냈던 일인 것 같다. Braxton 목사가 2009년에 사직한 후 후임목사가 2014년에야 임명된 것같은데 이번의 글에서는 시간의 제약으로 담임목사 공백기간의 이유나 그 공백기간을 어떤 방법으로 메꾸었던지는 알아보지 못하였다.

제7대 Amy Butler 목사 (2014-현재)는 최초의 여자목사이며 목회학박사이다. Riverside Church 에 오기전에 Butler 목사는 Washington, D.C. 의 갈보리 침례교회에서 33세 때부터 시작하여 11년동안 담임목사로 일하였는데 교세가 약해지던 그 교회의 교인수가 Butler 목사 재임기간 동안에 3배로 늘어 났다고 한다. 그녀는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에서 홈레스 셸터의 전도사로 시작해서 그 도시의 빈민층 교회에서 목사로 일했었다. 입양한 아이들을 포함하여 세 자녀의 어머니이기도한 Butler 목사는갈보리 침례교회의 목사로 봉직하는 동안에 이혼을 하는 등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었으나 교인들의 격려 속에서 잘 극복했다고 한다.

Riverside Church 는 초창기부터 사회정의, 인권문제, 국가정책, 국제문제 등에 관해서 외부 명사들을 초청하여 그들이 진보적이거나 때로는 파격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강단을 제공해왔다.

첫 번째 예로 Union Theological Seminary 의 Reinhold Niebuhr 교수를 들 수 있다. 그는 교수가 되기 전 디트로이트에서 목회자로 봉직할때 “과학적 경영혁신” 이라고 호평을 받던 헨리 포드 자동차 공장의 “assembly line” 공법을 새로운 간악한 노동착취 방법이라고 비난했는데, 그의 신앙노선이 Marxist, 아니면 사회주의적이었다고 비판까지 받았던 신학자이다. 두 번째 예로는 Paul Tillich 목사가 있다. 그는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히틀러를 정면으로 비난하다가 교수직을 박탈 당하고 처벌 될 위기에 있다가 그의 학식을 높이 평가한 Niebuhr 의 초청으로 미국에 옮겨온 사람이다.

Tillich 목사는 미국에 와서 새로 영어를 배우고 Union Theological Seminary 교수로 Niebuhr 와 함께 은퇴할 때까지 일한 사람이다. 아마 초청 설교자로써 가장 유명한 신학자가 Dietrich Bonhoeffer 목사가 아닐까 싶다. 젊은 신학자로써 신학논쟁으로 외로운 번민을 하고 있던 그 역시 히틀러의 집권을 극렬히 반대하였는데 , 히틀러를 비난하는 생방송을 하던 중에 방송 이 중단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1939년에 Union Theological Seminary 에 유학을 와서 원조 흑인 인종차별 규탄자이었던 Adam Clayton Powell 하원의원이 담임목사로 재직하고 있던 할렘의 Abyssinian Baptist Church 에 다니면서 강의도 하였고 흑인영가를 좋아해서 그 노래들을 독일에 보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유학을 이유로 Nazis 를 피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는 Union Theological Seminary 의 수준이 미흡하다고 생각했었다는 얘기도 있고, 또 Nazism 을 규탄하는 자신이 그것을 피해나올 수는 없다고 결단하여 다시 독일로 돌아가서 반 Nazism 지하운동과 비밀지하 신학교를 지속하던 중, 히틀러암살 계획에 참여했다가 1943년에 체포되어서 Concentration Camp 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미군이 입성하기 2주 전인 1945년 4월 9일에 39세로 교수형을 당한 사람이다.

Riverside Church 에서 지금까지 설교나 연설을 한 저명인사들은 아래와 같다.
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1967년에 “Riverside Speech” 라고 알려진 월남전쟁반대 설교를 하였다. 흑인으로써 최초로 메이저리그인 브루클린 다저스의 야구선수가 되었고 Baseball Hall of Fame 에 들어간 재키 로빈슨의 장례식에서 제시 잭슨목사가 조사를 하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2004년에 연설을 하였고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 이2001년 9월 21일 월드 트레이드 센터 공습폭파가 있은 후 연설을 하였다. 그외의 저명한 연사들 중에는 Cesar Chavez (계절적 농장노동자, 노동운동가), Desmond Tutu, Fidel Castro, Nelson Mandela, Arundhati Roy (인도의 유명작가로써 인권, 환경옹호주의자) 등이 있었고, 2012년 1월에는 킹 목사의 추도예배가 있었다.


이들 명사들의 이름들과 설교제목 등을 보면서 한 가지 유감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Coffin 목사가 이란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자고 설교한 적이 있었다는 것 이외에는 미국의 대중동 정책에 대한 연설을 한 사람들은 없었던 것같고 무슬림의 입장을 설명하거나 변호하는 연사들이 없었던 점이다.

아무 데도 갈 데가 없고 아무도 도움을 주는이가 없는 지친 부랑인이 “구원”이 아니라 “구제”를 받기 위해 교회를 방문해 “예수”라는 사람을 찾으면 “그런사람 여기없소. 딴데 가 보시오” 라고 말하는 교회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부끄러운 우스개 소리가 있다.

Riverside Church 는 사회가, 아니 교회들조차도 기피하고 외면하는 이들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교우들이 아니라)을 도와주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교회에 대해서보수적인 고정관념에 익숙한 기독교인들 중에는 “그런 일들이 국가나 사회사업 기관들이 책임질 일이지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는 일이요?” 라고 항변하는 분들도 더러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주변의 사정은 완전히 무시한 채로개인구원 만이 강조 되는것이 옳지않은 것임은 주일학교 학생들도 다 본능적으로 알고는 있다고 생각된다.

Riverside Church 는 여러 가지의 사회봉사 사업들을 실행해오고 있다. Food Bank, 이발사 교육, 무료의류제공, Shower Project, 비공개 HIV 검진과 상담 등을 한다. 특히 HIV 에 대한 광범위한 봉사사업을 해오고 있다. 매 분기마다 HIV Support Forum 을 개최하며 즉석 HIV 검진, 상담 과 치료에 관한 안내를 해준다. 또 치료를 위해서 Africa, East Asia, South Asia, Latin America, The Caribbean, The Middle East 와 유럽등지에서도 봉사한다.

Riverside Church 는 미국의 고문, 사형제도 금지운동에 참여해오고 있으며 ”폭력대신 대화”를 위해서 뉴욕경찰당국과 협조해오고 있다.
Riverside Church 는 미국원주민 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한 “Sharing/Densford Fund” 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또 Hispanic and Latino American 를 위한, South African 를 위한 Support Groups 등이 있다.

지난 6월12일 새벽에 Orlando 에서 발생한 무차별적 총격으로 102명의 사상자가난 참사사건의 희생자가 대부분 LGBT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사람들임을 감안 할때에 Riverside Church 가 해오고 있는 “Maranatha” (아랍어로 “Our Lord, come” 이라는 의미라고 함)라는 목회활동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임을 알게 된다. 이 목회는 LGBT 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활동인데 정기적인 포럼 과 워크샵, 영화상영 등을 하며 LGBT 들에게 무료 아침대접도 하고 1978년부터는 LGBT Pride parade 에 교회가 동참하고 2011년에는 교회에서 동성결혼도 허용했다.

Riverside Church 는 형무소 재소자 지원사업을 해오고 있다. 재소자들을 방문해서 상담하고 격려해주며 재소자 가족들을 방문하여 도움을 준다. 그들을 위해서 크리스마스에 선물도 수집하여 전달한다. 교회는 서류미비 이민자들과 망명자를 돕는 일들도 한다. 아무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을 수용소로 방문해주며 석방이나 가석방된 사람들 중 갈 데가 없는 사람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주고 음식조달을 주선해주고 최저생활용 현금지원을 한다고 한다. 이 대부분의 사업들이 물론 “교인배가운동식 전도”는 아니며 개교회가 지속적으로 해오기에는 쉬운 일들이 아니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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