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감옥생활에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민중의 무지였다. 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사람이 거의 다였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설파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 현실을 목도하면서 그는 연상(蓮上)이었던 자신의 호를 백범(白凡)으로 바꾼다.
독립을 위해서는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한 범부까지 모두가 적어도 자신 정도의 학식과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염원에서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구한말 한국인의 문자 해독 율은 얼마나 됐을까. 공식적 통계가 없어 알 수 없다. 1945년 해방 직후 미 군정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문맹률은 78%로 나타났다. 이는 비슷한 시기 말레이시아(62%: 1947년 기준), 짐바브웨(64% 역시 1947년 기준)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보다 훨씬 전인 구한말의 문맹률은 90%가 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한국인 특유의 엄청난 교육열 때문인가. 해방 이후 문맹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1958년 조사에서는 문맹률이 4.1%까지 떨어진다. 1966년에는 1%로 집계되면서 공식적인 문맹률 조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문맹률은 분명히 이처럼 최저 수준이이다. 그러나 실질 문맹률은 최고 수준이다. 이것이 한류를 자랑하는 한국의 현주소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지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실질 문맹률은 75%로 OECD회원국가 중 최하위다. 새로운 정보나 기술을 배울 수 없을 만큼 독해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특히 전문적인 정보기술(IT)이나 새로운 기술을 자유자재로 적용할 수 있는 고도의 문서독해 능력을 지닌 사람은 2.4%로 노르웨이(29.4%), 덴마크(25.4%), 핀란드( 25.1%), 미국(19%) 등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읽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읽어도 뜻은 모른다. 해독(解讀)은 되는데 독해(讀解)가 되지 않는다. 한국인 네 사람 중 세 사람이 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어디서 비롯된 현상인가. 한국의 성인들은 1년에 책 한권도 채 읽지 않는다. 한국의 실질 문맹률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책을 읽지 않는 습관 때문으로 분석된다.
열심히 일한다. 야근과 주말근무가 일상일 정도로. 이는 반대로 독서시간을 빼앗는다. 또한 영상문화와 인터넷의 급격히 발달은 책을 멀리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보시대에 민주사회 구성원으로서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있을지 우려할 정도로 한국인의 실질 문맹률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야기가 길어진 건 다름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런 내 아이가 이중언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학교당국의 권유에 당황해하고 있는 학부모들이 한둘이 아니란 소식이 들려와서다.
한국어는 날로 잊혀 져 간다. 영어는 영어대로 안 되고. 그리고 삶이 분주해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한다. 문제는 그런 ‘내 생활’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