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수필]기다림의 맛과 원숙함의 멋

2016-05-18 (수) 강신용 CPA·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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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듣기에 불안하기 짝이 없는 연설을하고 다닌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후보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자기 돈으로 선거하면서 하고 싶은 말잔치를 벌이더니 결국 매운맛에 탈이 나고 말았다. 먹기는 먹었어도 공연히 꺼림칙한 뒷맛에 미국이 시끌벅적하다.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제일 부자였다고 한다. 우리는 젊고 멋진 대통령으로 그를 기억하고 아직도 그리워한다. 케네디는 부자들에게 국민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 그들의 부를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개인의 재산은 단순히 호의호식하는 수단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더 잘 되도록 하는 데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유명한 ‘경주 최부자’집의 가훈과 일맥상통한다.


부는 멋지고 아름답다. 대한민국 역사의 3대 영웅이 1910년대에 태어났다고 한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 현대의 정주영 회장,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들의 부가 정치와 손잡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의 힘으로 빈곤을 물리쳤다. 얼마나 많은 땀과 피를 우리의 부모 형제들이 흘렸는지 모른다.

여명의 아침에 어머니의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고픈 배를 일깨운다. 된장찌개와 장아찌는 밥상의단골이다. 마당 뒷편에 외롭게 줄줄이 서있던 장독들은, 그냥 그렇게 밤낮으로 봄가을 여름겨울 다지새며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온갖 종류의 장아찌들이 장독대 곳곳에 박혀서 독한 맘 내려놓고 감칠맛을 잉태해간다. 어린 시절, 장맛에 이끌려 보리밥 나물 반찬에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손맛 사랑이라 여긴다.

말이 씨가 된다. 말은 그대로 씨앗이 되어 언젠가는 열매가 열리게된다. 신문에서 강영훈 전 총리님의 부음 소식을 보았다. 여러 해 전에 강 전 총리님을 안내할 기회가 있었다. 승강기에서 내리면서 내 명찰을 보시더니, 우리 일가구나 하시며 격려해 주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70대 은퇴한 어른의 기품이 내게는 멘토로 자리한지 20년은 되었다. 지금 미국에서 보는 70대의 돈많고 인기 있는 트럼프 후보는 막말 씨앗을 너무 많이 뿌리고 있는 것 같다. 품격은 말 속에 있다.

첫 인상은 3초 안에 결정된다고 한다. 첫인상에 반해서 결혼한 사람들도 많다. 보는 것은 눈 깜짝할사이지만, 말을 듣고 나누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미국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통령은 16대 링컨이다. 40세에 접어들면 자신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지라는 링컨의 일화는 유명하다. 장독 속의 김치도 한 계절 숙성의 시간을 지나면 입에 살살 녹는데, 불혹의 나이라면 얼굴 위에 품격을 걸치고 살게 마련이다. 만나면 만날수록 멋져 보이는 원숙한 사람들은 숙성의 멋을 나눌 줄 아는 품격 있는 대화를 한다.

맛의 3박자는 어디서 나오나. 예전에는 맛, 향, 그리고 식감을 앞세웠다. 요즘 세대는 가격, 분위기, 그리고 맛을 꼽는다. 싼 값에 맛있고 분위까지 받쳐준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라고 한다. 그래도 맛 중의 맛은 기다림의 맛이 최고가 아닐까.


우리의 혀가 느끼는 숙성된 삭은 맛, 기다림으로 얻은 그 맛이 바로 감칠맛이다. 자연 속에 발효된 음식은 우리의 전통이고 기다림의 맛이다.

음식도 입에 당기는 감칠맛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감칠맛이 있다. 원숙한 멋은 감칠맛이 난다. 멋이란 듣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은 것이다. 자신감 있는 표정과 당당한 몸짓처럼, 원숙한 멋은 세월의 흔적 속에 어울려야 제 맛이 난다. 영혼이 살아있는 품격 있는 말 속에 너와 내가 함께할 넉넉한 원숙함의 멋이 우리가 바라는 감칠맛이 아닐까.

이곳저곳 너무 시끄럽다. 트럼프도 시끄럽고 조국을 닮은 한인타운도 시끄럽다. 늙은 만큼 원숙해지고 삭힌 만큼 숙성된 감칠맛 있는 사람이 그립다.

<강신용 CPA·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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