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페라리속도로 달리는 허머같은‘미친 스릴러’… 곡성

2016-05-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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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속도로 달리는 허머같은‘미친 스릴러’… 곡성
페라리속도로 달리는 허머같은‘미친 스릴러’… 곡성

페라리속도로 달리는 허머같은‘미친 스릴러’… 곡성

페라리속도로 달리는 허머같은‘미친 스릴러’… 곡성

‘곡성'을 굳이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영화를 본 뒤 당신이 느낄 당혹스러움 그대로가 '곡성'이다. 영화는 통제 불능의 삶, 그 한없는 무능을 향해 달린다. 자신에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해 뛰고 또 뛰며 발악하던 ‘종구'(곽도원)도 그 무능 탓에 결국 멍한 표정으로 주저앉아버리니까. 종구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확신할 수 없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곡성'을 낳기까지의 6년, 그 시간은 이 질문의 화두였고(나 감독은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있다면 그가 피해자가 된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했다), 나 감독이 택한 답이 ‘곡성'이다.

‘아, 삶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다. 불가해함, 그것은 악마다.

이른바 ‘예술영화'의 주제처럼 보이는 이 아득한 이야기를 위해 나 감독은 ‘쫀득한 스릴러'를 택했다. 러닝타임 내내 미친 듯이 전력 질주하는데, 마치 페라리의 속도로 달리는 허머(Hummer) 같다.

‘발단-전개-위기-위기-위기-절정-절정-절정-절정'으로 치달아 속도감 못지않은 서사의 육중함으로 관객을 밀어붙인다. 한국영화에서 본 적 없는 영화적 체험이다. 최근 수년간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 영화계에 ‘곡성'은 나 감독이 뽑아 든 야심 찬 반기라고나 할까.

전라남도 ‘곡성'이라는 한 마을에서 경찰 종구는 살인사건을 마주한다. 시골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극단적인 살인사건에 의문을 갖지만,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버섯이 원인이라는 당국의 결론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달아 벌어지는 살인사건이 정체불명의 일본인이 마을에 들어온 후부터 벌어졌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자 종구는 동료와 함께 조심스레 수사에 나선다. 수사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중 종구의 딸 효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아프기 시작하면서 혼란에 빠져든다.

‘곡성'은 매우 독특한 세부장치들로 인해 전에 본 적 없는 장르의 작품으로 이야기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릴러 장르의 격(格)을 매우 정직한 연출 방식으로 따르고 있다.

157분의 러닝타임에도 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결국 ‘서스펜스를 끝까지 유지하라'는 스릴러의 대전제를 충실히 지키는 데서 나온다. 나 감독은 이미 앞선 두 작품(추격자·황해)에서 서스펜스를 다루는 최상급 실력을 보여줬다.


전체적으로 ‘곡성'의 플롯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주는 에피소드를 풀어내 이야기가 가장 절정에 치달았을 때 영화를 끝내버리는 방식이다. 나 감독은 이 방식에 약간의 변화를 준다. 영화를 ‘일광'(황정민) 등장 전후로 나눠 전반부에는 코미디와 서스펜스를 균형감 있게 배치해 관객이 이야기에 점차 스며들게 한다. 일광이 등장하는 후반부에는 웃음기를 빼고 전반부보다 더 강력한 에피소드를 강도를 높여가며 몰아쳐 관객의 혼을 빼놓는다.

단순히 발생사건의 세기를 높이기만 했다면 관객은 이 영화의 마지막 결정적 장면을 보기도 전에 지쳐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곡성'은 관객을 천천히 옭아매 도저히 나갈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무장해제 상태가 되면 그때부터는 더 큰 자극을 줘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한다. 일광과 외지인이 굿판이 교차 편집된 장면에서의 그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온전히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자칫 황당한 느낌을 줄 수 있는 클라이막스 장면을 전율로 치환한다.

연출 방식도 뛰어나다. 와이드 앵글로 분위기를 잡고, 점점 클로즈업해가며 관객의 긴장감을 고조한 뒤 익스트림 클로즈업 쇼트로 등장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어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관객의 감정 폭주를 끌어낸다. 사건의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보여준 뒤 그 사건으로 인한 파급효과에 주목하는 플롯을 구성, 러닝타임 내내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격(格)과 ‘파격'(破格)이 혼재한다.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존재가 등장한다. 신과 귀신, 꿈과 현실이 뒤섞여 있고 토속신앙과 천주교, 일본신앙이 복합된 이미지로 나타나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닭이 세 번 울면' ‘손바닥의 못 박힌 자국'과 같은 종교적 메타포를 적극적으로 끌어와 어떤 신앙, 어떤 종교로도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삶의 난해함을 설명한다. 투박해서 ‘유치한 상징'도 보이지만 나 감독은 이 모든 요소를 상업영화의 틀 안에 넣어 자신의 영화적 야심, 정체성을 드러냈다.

‘곡성'의 야심을 완성한 건 배우들이다. 곽도원, 황정민, 쿠니무라 준, 김환희, 천우희 등은 실제 같은 연기력을 과시한다. ‘종구' 곽도원은 주연 배우로의 가능성도 증명했다.

조연을 맡은 황정민은 ‘달콤한 인생'(2005)에서 ‘백사장'을 뛰어넘는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고, 쿠니무라 준은 스크린을 넘어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황정민과 쿠니무라 준의 굿판 장면은 아마도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환희는 아역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름끼치는 연기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네명의 배우 모두 연말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거머쥘 장면이 오버랩될 정도다.

영화에는 금어초가 수차례 등장한다. 금어초의 꽃말은 수다쟁이·욕망·오만이다. ‘곡성'을 통해 이 꽃말을 풀어보면 ‘욕망에 휘둘려 삶을 안다고 오만하게 떠벌리지 말라'가 되지 않을까. 떠벌리는 순간, 그때 당신의 삶이 당신의 뒤통수를 때릴 것이다.

이것이 나홍진의 ‘곡성'을 통해 보는 우리가 사는 세계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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