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떤 사람’

2016-05-12 (목) 09: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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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chard Jones

▶ 임혜신 옮김

아버지는 바닷가에 사신다
아침이면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덱에서
커피를 마시며
해변을 걷는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신다.
오후엔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신다
바다의 선장처럼 하얀 골프카트를 타고
페어웨이를 달리신다.
하루에 한 백 명쯤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실 거다.
내가 자라면서,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남남처럼, 한 번도 만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만일 내가 해변의 관광객이거나
골프를 치다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라면
그래서 내가 아버지를 처음으로 만났다면,
무슨 말을 나누었을까.
서로를 소개할 때
내손에 닿는 아버지의 손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그저 어떤 사람처럼,
눈을 들여다보며, 나는 느낄 것이다
평생 알았던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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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아버지가 대화를 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굳이 무슨 불화가 있어서가 아닐지라도,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무뚝뚝하니 평생을 살기도 한다. 하루에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대화를 즐겁게 나누시는 아버지는 왜 아들과 이런 사이가 되었을까. 소통하지 않아도 아들은 아들이고 아버지는 아버지다. 그러기에 아버지를 우연히 마주치는 상상을 통해 아들이 전해주는 아버지를 향한 정은 쓸쓸하고도 깊을 뿐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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