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지 “5월은 가정의 달”과 같은 구호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과거엔 국가적 차원에서라도 5월이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줬건만 이젠 그 어디서도 이를 강조하지 않는다. 다들 각자 잘 알아서 하는 개인주의적 분위기가 만연하는 사회가 돼서일까.
얼마 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응팔(응답하라 1988)’에 푹 빠져있던 한 지인이 한 말이다. 목사님, 쌍문동 골목이 천국 아니에요? 천국이 따로 있나요? 특히 그 골목을 지배하는 세 아줌마들 사이에 오가는 가족 이상의 끈끈한 정 속에서 천국의 모습을 보았다는 얘기다.
나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한 집에서 조리한 특식을 자식 시켜 옆집에 배달한다. 음식을 받은 집은 빈 접시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자기 집 음식을 배달시킨다. 음식들이 집집마다 돌고 돈다. 콩 한 쪽도 나눠먹는 존재가 가족인데, 그런 가족의 특성이 생물학적 혈연에만 국한되지 않고 골목길 이웃까지 연장되는 것을,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드라마에 열광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해본 것. 미국까지 이민 온 나의 가족 같은 이웃은 누구? 한국말 하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목사여선지, 내게 그런 존재는 교회 교인들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 가야 만날 수 있는 것이고, 매일 매시간 함께하는 물리적인 이웃들이 과연 ‘쌍문동 식’의 가족 같은 이웃들인가, 라고 묻고 싶었던 것이다. 그 답은 뭘까? ‘아니다’이다.
아파트형 콘도에서 살기 때문에 이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해서, 한 번 살펴보았다. 바로 옆집의 젊은 동거 남녀. 한국에선 층간 소음이라고 부르던데, 지금은 얌전해졌지만 한때 그 층간소음으로 내게 적지 않은 곤욕을 줬던 친구다. 그때의 갈등이 가져다준 여운이 남아 지금도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고 형식적인 인사말만 주고받는다. 바로 건너편 또 하나의 동거 남녀.
미안하지만 이들은 정말 진상이다.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다. 화날 일이 뭐가 그리 많은지 온종일 입이 나와 있다. 가로질러 비스듬히 있는 집. 은퇴한 노년부부다. 한 달이고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은둔칩거 형이다. 좋은 부부인 건 분명한데 말길 건네기가 여간 쉽지 않다.
이들과는 달리 좀 괜찮은 친구가 둘 있다. 아래층의 독신 남자 고등학교 선생과(우리는 그를 ‘자선생’이라고 부른다, 하도 자유주의 스타일이어서), 반대편 통로에 사는 은퇴한 독신 백인남자다(그는 ‘독일병정’이라고 부른다). 만나면 가벼운 인사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 사실은 별로 영양가 없는 얘기들을 나누는 편이다. 특히 ‘독일병정’은 온 콘도의 안전을 감시하고 돌아다니다 보니 콘도 내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일은 그에게 물어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둘만이 그래도 좀 ‘이웃 같은 이웃’ 같다. 가족이 진짜 가족이며, 이웃이 진짜 이웃인 이유는 무엇일까? 쌍문동 식 해법으로 답하라면 이렇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 영양가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면서도 얼마든지 깔깔댈 수 있기에. 특별히 할 일이 더 남아 있지 않는데도 헤어지고 싶지 않기에. 콩나물 무치면 그것도 나눠먹고 싶어 연락할 수 있기에.
그 집안 대소사까지 이미 다 알고 있어 문제가 터지면 그 일에 나까지 불가항력적으로 연루될 수밖에 없기에. 돈 꿔주고도 이자는커녕 원금 받지 못해도 섭섭한 마음 들지 않기에. 파자마 입고 널브러져 있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게 가족인데, 그러나 요새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냉랭한 격식을 요구한다. 가족끼리도 돈 거래만큼은 무서울 정도다. 자식은 부모 성공의 도구요, 부모는 내 성공가도를 위해 일시적 헌신을 해야 하는 담보물 같은 존재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고전적 가족공동체 구현의 유일한 장은 그래도 교회밖에 없다고 본다. 주일이면 교회를 찾아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가장 확실한 게 바로 이것 아닐까. 여전히 진짜 가족이 그립고, 여전히 쌍문동 골목의 이웃들이 그립기 때문이다.
가족의 참 가치가 어머니날이나 아버지날 선물 주고 밥 사는 일로 실현될 수는 없다. 무한 경쟁이 선점해 모든 가치 평가를 ‘일등주의’와 ‘제일주의’ 기치 아래서 내려지고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교회와 우리의 가정들이 정신 차려야 할 것 같다. 쌍문동 드라마를 보며 “그땐 그랬었지” 하며 향수에 젖을 수만은 없다. 가정을 살려야 한다. 가정의 고전적 가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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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