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녀 교육의 어려움

2016-05-03 (화) 09: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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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선옥 / 샌프란시스코

얼마 전 늦은 저녁시간, 클래식 연주회에 아이와 큰맘을 먹고 다녀왔다. 오랜 공연을 잘 참고 감상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몸을 배배꼬며 앉아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가 앉은 두 줄 앞으로 부모와 온 남매가 있었는데, 공연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두 시간 내내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부모는 어떤 생각으로 아이들을 데려다 무대 정면 중앙에 앉혀 둔 것일까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로 뒷자리였으면 분명 한 소리를 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아이들의 행동은 오랜 기간 연습을 하고 무대 위에서 혼신을 다하는 연주자들에게는 무례한 행동이었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민폐를 끼친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 아이들의 부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잘못하면 부모로서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지만 남의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일은 하고도 후회, 안하고도 후회가 되기 쉽다.


최근에 읽은 ‘가정교육의 붕괴(the collapse of parenting)’라는 책의 내용에 공감한다. 지난 27년 동안 소아과 의사로 일한 저자는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무례한 태도와 소아 비만, 약물 의존 등 여러 문제점들의 근원이 부모가 아이들을 올바로 훈육하지 못하고 너무 많은 결정/선택권을 주며 ‘어른 취급’을 하는 데에 있다고 다양한 사례와 자료들로 설명한다.

간단한 예로 병원에서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의사 선생님이 네 귀를 좀 들여다봐도 될까?” 식으로 물어보는 순간, 쉽게 끝날 진료는 눈물 콧물 바람의 전쟁터로 바뀐다. 이럴 때는 부모가 “의사 선생님이 네 귀를 들여다볼 거다”라고 통보를 해야지,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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