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칼럼] 기다림
2016-04-13 (수)
김문철 목사/ 천성교회
오래 전 휴대폰 광고에서“속도! 너 마음에 든다!”라는 구호를 본 적이 있다.속도가 승부를 가른다는 의미다.빠르지 않으면실력도 없고 열등한 것처럼 보인다.주문한 음식이 5분 이상 걸리면 분노한다.약속 시간 10분만 늦어도 관계가 틀어진다.인터넷 클릭 후 1초 안에 원하는 화면이 안 뜨면 컴퓨터를 저주한다.그래서 속도 문화에서 느리거나 기다림은 환영 받지 못한다.
한국에서“45초 햄버거 정책”이이슈가되었다.주문 음식을 속히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정책이다.고객은 주문 뒤 잠시 옆에 서 있으면 결재와 함께 약 1분 내외로 완성된 햄버거를 받을 수 있다.고객은이런 속도에 환호한다.하지만 이런 속도를 내기 위해 노동자들은 초 단위로 노동이 통제된다.당연히 조급해진다.기름에 데이고,칼에 베이고,거짓 미소를 보여야만 한다.기다림을 싫어하는속도문화가 낳는 현상이다.
하지만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는 현상은 오늘날만의 일은 아니다.성경에도 기다리지 못해 조급해 하는 모습이 곳곳에 등장한다.한 예로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다리지 못해 안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6) 로마를 속히 전복하고 싶다는 질문이다.하지만 주님은 그런 조급증에 빠진 제자들에게 “기다리라”(4) 고 말하신다.왜?기다림이 더 좋은 결과를 주기 때문이다.물론 무작정 기다림이 아닌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라고 하신다.성령께서 조급증을 줄여주고,겸손함과 자신감을 주고, 볼 것을 보게 만들기때문이다.
성경은 기다림의 사건으로 가득하다.아브라함은 아들을 얻기 위해 100세까지 기다렸다.야곱은 사랑하는 부인을 얻기 위해 14년을 기다렸다.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입성하기 위해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다.왜?사람 만들기 위해서다.기다림을 통해 인생이 반드시 내 방식과 내 뜻데로 되는 것이 아님을 배우기 때문이다.그것을 배우지 못하면 이기적으로 변하기때문이다.
핸드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있다.전화를 했는데 상대가 받지 않으면 의심하는 일이다.일부러 안 받는다고 생각한다.의심은 상상을 낳고 상상은 소설을 쓴다.상대가 전화를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을 생각하기 싫어한다.한번 의심을 하면 상대방의 사정이나 입장 설명도 별로 도움이 안된다.그래서 돌을 던진다.내가 원하는 때에 상대가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이유때문이다.속도 문화가 낳은 아픔이다.
그래서 기다림의 훈련이 필요하다.한 박자 물러서서 나를 돌아볼 여유가 필요하다.주님이 제자들에게“기다리라”고 하신 이유가 있다.조급하면 실패하기때문이다.교만하고 자기애로 가득찬 사람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무엇보다도 내 인생의 주인이 나인 것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성령의 인도와 도움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신다.
실제 우리 인생에서 기다리지 못해서 오는 폐단은 많다.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어떤 인간이 되는가(Being) 보다 어떤 일을 하는가(Doing) 에 초점을 모은다.그래서 무엇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조급해 한다.운동선수의 약물 복용,고용주의 노동착취, 기독교의 기복 신앙이 다 기다리지 못해 오는 현상들이다.
우리는 속도 문화에서 살고 있다.그래서 기다림은 나태하고 소극적인 것처럼 보인다.과연 그럴까?아니다.기다림은 때론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적극적인 삶의 방식이다.으르렁대는 환경 속에서 기다리는 일은 인내와 절제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산모가 소망 중에 출산을 기다리듯 때론 기다림이 최선의 방식이다.기다림!속도의 시대에 생각해 봐야 할 삶의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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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철 목사/ 천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