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각 대학의 합격자 발표가 거의 끝났다. 이제 예비 대학생들은 합격 통보를 받은 대학 중에서 어느 대학을 선택하느냐와 어떤 학과를 전공으로 정하느냐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친지 한명이 아들과 불화를 겪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P여사는 최근 고등학교 우등생인 외아들 잔과 냉전을 겪었던 얘기를 했다. 바로 아들의 전공 문제때문이다. P여사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이고, 변호사인 남편과중상층 생활을 하는 전형적인 백인 가정이다. 잔이 공립과 사립 여러 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아서 기뻐하던 것도 잠시, 앞으로 어떤 전공을 하느냐를 가지고 모자간에 이견이 생겨 몇번의 언쟁이 있었던 것이다.
잔은 영문학, 그중에서도 중세영문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고,영어 선생님인 엄마는 “그런 실용 가치 없는 전공을 택하겠다면, 네 아버지와 나는 너에게 막대한 금액의 학비를 투자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했다. 중상층 가정의 외아들로서 하고 싶은것 다 하고 자란 잔은 막상 전공 결정에서 엄마의 강경한 반대에부딪치자 당황해 대화도 안하고 시무룩한 상태로 있었단다.
신입생들의 전공 결정에 대해서 교사와 상담사들이 학생들에게 가장 흔히 해주는 조언 중 하나가, 자신의 열정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열정을 추구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나 역시 교사로서 또 카운슬러로서 이같은 충고를 단골로했다. 이 충고가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합리적으로 들리는 동시에 전공결정을 본인에게 맡김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책임지게 하는 것도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나는“자신의 열정을 따르라”는 충고가 대학 진학을 앞둔 틴에이저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지 않는 겉치레 충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Passion)이란 말은“이것보다 저것을 더 좋아한다”는 식의 취미 정도를 의미하는것이 아니고, “일생동안 열렬히,꾸준히 추구할 만큼 좋아하는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고, 그렇다면 10대 청소년들 중에서 주저하지 않고 “바로 이것이 나의 열정입니다” 라고 대답할 아이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 차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공 선택을 지도할 때에는 열정이 무엇이냐는 질문도 필요하지만, 대학 졸업 후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으냐, 원하는 직업을 세 개만 순위대로적어 보라거나, 수입은 얼마정도이어야 되겠느냐 와 같은 냉정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질문을 포함시키는 것도 상담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갖게 되었다.
미디어에는 전공에 따른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과 초봉, 5년이나 10년 후 기대 연봉이 자주보도된다. P여사가 아들과 언쟁도중에 끄집어낸 무기가 바로이 통계이다. “ 열정이 없는 삶은 내면의 기쁨이 없는 삭막한 삶이라는 것 엄마도 잘 안다. 그러나 냉정이 결여된 삶은 정착지를 찾지 못한 좌절된 삶이 되기 쉽다. 문학을 향한 너의열정은 일생 너를 행복하게 해줄 조건이지만, 냉정한 계산은 일생 최소의 품위를 갖춘 생활을 유지하면서, 네 열정추구를 가능하게 해줄 기본 조건이다. 현재 톱 연봉 직업이 10년후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위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사회적 경제적 변화도 하나의 변수로 넣어서, 미래를 계획하는 냉정함을 네가 항상 유지했으면 한다.”결국 중세 영문학을 주 전공으로 하고, 연봉 중위권에 있는실용성 있는 학과를 부전공으로한다는 약속으로 P여사는 아들과 타협을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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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교육 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