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네가 그냥 너여서 좋아”

2016-04-04 (월) 09:18:34 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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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의 한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아침 준비를 할 때였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부모들이 자녀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일학년 막내가 받아쓰기 시험을 계속 100점 받아 신이 납니다. 아들, 사랑해!” “중학생 딸애가 중간고사를 잘 봐서 넘 행복한 하루입니다. 주연아, 사랑해!” 이런 비슷한 사연들이 계속 되었다.

듣다보니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해 부모가 신이 나고 행복한건 당연한데, 그 뒤에 꼬박꼬박 붙은 ‘사랑해’란 외침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공부를 잘하고 성공했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공부를 못했을 때, 실패를 했을 때도 “여전히 널 사랑해”라고 말해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있는 일(doing) 때문이 아니라 존재(being) 자체로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연을 보낸 부모들이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님을 안다. 그러나 말에는 직접 드러난 표현 밑에 깔린 뉘앙스와 내포된 의도, 그리고 말하는 이의 표정과 몸짓을 포함한 무언의 메시지가 함께 전달된다. 대놓고 “네가 공부를 잘하면 사랑하고 공부 못하면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아직 뇌 발달이 미숙한 아이들은 표정과 말투를 통해 흑백의 메시지를 전달 받는다. 공부를 잘했을 때 ‘사랑한다’ 말하며 기쁘고 행복해하는 부모의 얼굴, 그리고 시험을 못 봤을 때 냉랭하고 차갑던 부모의 표정과 행동은 잘했을 때는 사랑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존재 자체로 귀히 여겨지는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인지 모른다. 우리가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조건부 사랑이었기에 비슷한 사랑을 자녀나 배우자에게 전달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받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한번 돌아보자. 어른이 된 지금도 인정과 칭찬과 사랑을 받으려 애쓰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머리로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부모들과 다를 수 있다.

변화의 첫 단계는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의 부모들이 조건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했다 할지라도, 이제 의식적으로 자녀에게 무조건적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려 노력하는 건 나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being’의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공부를 잘하고 성공했을 때에만 “사랑해”를 말하는 대신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에도 꾸중과 훈계를 마친 후 “네가 이런 실수와 잘못을 해서 마음이 많이 속상하구나.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널 사랑해”라고 한마디 덧붙이며 안아주는 연습을 하자.

잘못한 일에 실망스럽고 화가 나는 것이지 네 존재에 대해 실망하고 미운 게 아니라는 의도를 자주 전달하도록 하자. 그리고 조금 어색해도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도 한번쯤은 말해주자. ‘네가 그냥 너여서 참 좋다.’

존재(being)로 사랑받는 아이와 행위(doing)로 사랑받는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큰 차이가 있다. 아이의 자존감이 여기서 시작된다. “사랑해”라는 말이 정말 필요할 때는 성공했을 때 보다 실패하여 세상에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은 때이다. 자녀가 세상에 나가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될 때 평소 부모가 해주던 “네가 어떤 모습이든 난 언제까지나 네 편이야. 네가 너여서 참 좋아”라는 메시지가 힘을 발휘할 것이다.

<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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