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앵무새 죽이기’와 미국의 양심

2016-04-02 (토) 08:26:25 김용제 안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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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의 여류작가 하퍼 리(Harper Lee)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89년 생의 마감은 문학계를 넘어 온 국민에게 큰 뉴스였고 그의 처녀작 ‘앵무새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가 널리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 책은 다음 해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이어 영화로 만들어져 할리웃의 전설적 배우 그레고리 팩에게 아카데미 주연상을 안겨주면서 ‘꼭 봐야할 100 영화’중 하나로 꼽혔다.


지금 이 책은 전국 중고등학교의 필수교재가 되어서 미국에서 이 책을 읽지 않고 학교를 다닌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이어 속편을 쓰고 난 후 작가는 이 책이 불러온 엄청난 명성과 주목에 질리고 겁이나 다시는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었다.

1930년도 흑인차별이 극심한 남부 앨러배머의 한 마을에서 상처한 변호사 아버지와 4살 위 오빠와 함께 사는 6살짜리 말괄량이 스카웃의 2년간의 삶을 그의 입을 통해 서술하는 스토리는 작가자신의 어릴 적 삶에 의거한 것이다.

아버지 에디커스는 엄마 없는 자녀에 대한 깊은 사랑과 올바른 윤리의식을 본보기로 보이며 가르치는 현명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다.

어린아이 눈에 이해가 안 되는 편견과 차별, 악습의 어른들 세계, 이런 세상을 조금씩 배워가는 천진난만한 두 아이와 옆집 친구의 하루 하루를 어린아이의 재미있고 귀여운 말로 이어가는 스토리는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보다 80년 앞서 나온 또 하나의 고전인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다루어졌지만 이 책만큼 강한 의미를 담지는 못한다.

스토리의 절정은 가난하고 무식한 백인 여성이 외로움과 성적욕구를 못 견뎌 가끔 잔일들을 해주는 동네 흑인남자를 유혹하려는 장면을 목격한 아버지가 딸을 심하게 구타하고 흑인을 강간범으로 몰면서 재판이 벌어지는 사건이다.

작가는 미국남부의 극심한 흑인차별과 학대를 지금은 금지된 단어들(nigger, white trash 등)을 쓰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본의 아니게 법원으로부터 피고 변호를 지명받은 에디커스는 온 동네 백인들에게서 차가운 눈초리, 노골적인 경멸과 협박을 받고 딸은 학교에서 놀림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그 억울한 흑인을 변호한다.

양심 있는 인간이면 피고의 무죄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에디커스의 멋진 최종변론은 많은 젊은이들을 변호사가 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죄판결이 나오고 피고는 구치소 경비원에게 살해당하고 에디커스의 두 아이들마저 습격 당는 등의 이야기는 불과 몇 십년 전 미국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미국인들에게 인간의 양심을 가르치고 성경 다음으로, 더러는 그보다 더 깊게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때 아니게 인종차별, 종교차별. KKK 같은 것들로 얼룩이지고 있는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를 보면서 미국인들이 이 책 혹은 영화를 다시 한번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김용제 안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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