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른들, 참 비겁하지 말입니다…‘글로리데이’

2016-03-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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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아 이주 이영화

어른들, 참 비겁하지 말입니다…‘글로리데이’
청춘영화에서 질주신은 빠지지 않는다. 청춘은 늘 달린다. 라이징 스타 류준열이 출연한 ‘글로리데이’(감독 최정열)도 예외는 아니다. 바닷가에서 네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바람을 가르며 달리더니 어느 순간 어두운 골목길을 꽁지가 빠지게 달린다.

무슨 문제를 일으켰는지 경찰관 2명이 뒤쫓는다. 매사 성실하고 착한 상우(김준면)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만 도망치자”고 하나 부모가 무서운 지공(류준열)과 두만(김희찬)은 파출소로 끌려가면 번거로운 일이 생길 수 있으니 그냥 어물쩍 넘어가자고 한다. 둘씩 조를 짜 도망가다 갑자기 끽! 상우가 쓰러진다. 뺑소니 사건이 발생해버린 것이다.

‘글로리데이’는 흔한 청춘영화처럼 시작한다. 서로 성격도, 가정형편도 다른 네 친구가 어느 밤 지방의 한 도시에서 겪게 되는 일은 또 한 편의 소동극이 될 것처럼 전개되나 좀 더 복잡해진다.


가정폭력의 상처를 안고 있는 용비(지수)는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로 의리가 있다. 상우(김준면)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매사 성실하고 어른스런 친구다. 그는 할머니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려고 대학 대신 군대를 택하고 용비는 친구들과 함께 상우를 배웅하기로 한다. 지공(류준열)은 엘리트 부모를 뒀으나 공부보다 놀기를 더 좋아한다. 그는 재수를 강요하는 엄마의 감시를 피해 탈출에 성공, 여행에 합류한다. 야구감독인 아버지의 강압에 마지못해 선수로 활동하는 소심한 두만(김희찬)은 친구들의 부추김에 반강제로 동행한다.

포항의 바닷가. 어른이 된 기분에 한껏 들떠 있던 것도 잠시, 우연히 위험에 처한 여자를 구하려다 시비에 휘말린다. 출동한 경찰차를 보고 겁이 난 그들은 달리기 시작하고 상우의 갑작스런 사고로 반전, 경찰서에 끌려간 그들은 믿기 힘든 현실과 직면한다.

우리는 흔히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의 진가나 그 사회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영화는 갓 스물이 된 네 청춘의 혹독한 성인 신고식이다.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들춰낸다. 청춘영화처럼 보이지만 청춘들이 겪는 예기치 못한 사고를 통해 ‘부끄러운 어른’을 비춘다.

다소 익숙한 상황과 풍경이 펼쳐지지만 사건을 보여주는 순서를 바꾸는 등 다양한 변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증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예상을 비껴가는 비틀기는 그렇게 새로운 국면을 연출하고,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네 친구에게 닥친 부조리한 상황을 펼쳐낸다. 그 과정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사회와 어른들의 민낯은 씁쓸함, 네 친구의 심리적 변화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최정열 감독이 20대 후반에 쓴 시나리오다. 10년이 지나 자신 또한 시시한 어른이 돼 있음을 깨닫고 그저 하룻밤 소동극에 불과했던 청춘의 이야기는 비겁해진 어른의 반성문으로 거듭났다.

이 영화 속 어른들은 나이나 직급, 가진 정도에 따라 더 비겁하거나 덜 비겁할 뿐 모두 바른 소리를 낼 의지가 없다. 경찰은 사건의 진실보다 그저 윗선의 지시를 따르거나 대충 빨리 일을 마무리하는 데만 관심 있다. 네 청춘의 도움을 받은 한 어른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거짓과 침묵을 선택하고, 무고한 청춘을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뺑소니범은 찾을 길 없다. 속 타는 부모는 어떡하면 내 자식을 보호하고,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촉각을 세운다. 어른들의 겁주기에 아이들의 우정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두려움에 후회할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최 감독은 “어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과연 진심이나 진실은 어디에 있나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들은 은폐되거나 삭제되고,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거짓과도 손잡는다.”자신 또한 예외가 아님을 인정한다. “탐욕과 부조리로 가득한 사회, 거기에는 당연히 나의 침묵도 모여 있다. 점점 부끄럽고 시시한 어른이 돼가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청춘들. 더 이상 그들을 망치지 않게, 나(어른)의 비겁함을 기록하고 고백하고자 한다.”이 영화에서 어느 일선 경찰관은 아이들의 말을 믿으며 다른 가능성을 의심하지만 상사의 으름장에 금방 꼬리를 내린다. 따지고 보면 갓 세상에 나온 청춘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결국 나의 안전이 우선시된다. 늘 그렇듯 약자가 가장 많은 피해를 본다. 가장 힘없는 그들은 비빌 언덕도 없고 영악하지 못해 눈 뜨고 코 베인다.


“모든 어른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정의나 진실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나 더 큰 힘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막히고 좌절되는 게 아닌가.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본다.”최 감독은 “어른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갓 사회에 나온 청춘들이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봤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싫다. 본질에는 관심 없고 그저 이겨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영화가 친구들의 변심을 최대한 이해하고 따뜻함을 잊지 않는 것은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싶어서다. 법원에서 판결 받고 아이들이 나오면 그들의 보호자가 우산을 씌워준다.

최 감독은 “자식을 보호하려는 부모의 마음은 알겠지만 스무 살은 좀 더 진취적으로 꿈꿀 나이다. 너무 어른의 시각 속에 청춘을 가둬놓지 말고, 스스로 아프고 극복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때 어른이 해야 할 일은 진실에 눈감지 않고, 부조리한 상황을 올바로 잡는 것일 것이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터질 수 있다. 그 사고를 어떻게 수습해 마무리하는지가 그 사회와 구성원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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