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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환자 두 번 울리는 사회 ‘인슐린 주사=인생 끝’ 아니에요

2016-03-29 (화)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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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승진·결혼 등 불이익 편견 탓 감추고 치료 꺼려

▶ “평생 인슐린 치료”는 오해 호전되면 먹는 약으로 전환

당뇨병 환자 두 번 울리는 사회 ‘인슐린 주사=인생 끝’ 아니에요

인슐린주사는 체내 인슐린 분비가 안되는 제1형 당뇨환자는 물론 먹는 약으로 혈당조절이 안 되는 제2형 당뇨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다.

# 지난해 4월 결혼한 A(33ㆍ여)씨는 얼마 전 남편과 시댁 식구에게 자신이 ‘임신성 당뇨’에 걸렸다고 거짓고백 했다. 사실 A씨는 4살 때 제1형 당뇨병을 진단 받은 당뇨병 환자다. A씨가 거짓말을 한 이유는 과거 상처 때문이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에게 당뇨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가 “평생 주사를 맞아야 하는 여자와 결혼시킬 수 없다”는 남자 집안의 반대에 결국 결혼이 깨졌다.

# 10여년간 당뇨병과 투병해 온 B(45ㆍ남)씨는 자신이 당뇨병 환자임을 직장에서 숨기고 있다.

B씨는 점심과 저녁 식사 전 남몰래 화장실에 숨어서 자가 인슐린주사를 맞는다. 회식자리에서는 술과 음식을 티 나지 않게 조절해 오고 있다. 내달 부장 승진을 앞둔 B씨는 당뇨 환자임이 ‘발각’되면 승진에서 탈락할 있다는 우려에 요즘 ‘보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슐린주사=인생 끝’ 편견에 투병 사실 쉬쉬

당뇨병 환자들이 인슐린주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한쪽에선 당뇨라는 모진 병마와 싸워야 하고 또다른 쪽에선 ‘인슐린주사=인생 끝’이란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맞서야만 한다. 특히 인슐린주사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당뇨병에 걸려 인슐린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정작 치료 자체를 꺼리는 이른바 ‘당뇨병 패러독스’의 으뜸 원인이 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당뇨병 환자는 258만 명이다. 이들 환자 중 인슐린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1형 당뇨환자 수는 10만8,901명(3.8%)이다. 전체 환자의 77.8%를 차지하고 있는 제2형 당뇨환자는 223만5,783명으로 2010년 186만 명에서 5년 새 37만 명이 늘었다.

제2형 당뇨병은 제1형 당뇨병과 달리 약물 투여로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약물만으로 혈당 조절이 안 되거나, 10년 이상 당뇨가 지속돼 체내에서 더 이상 인슐린 분비가 안 되는 경우 인슐린치료를 받아야 한다. 1형 당뇨병은 혈당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췌장에서 인슐린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음에 따라 외부에서 인슐린을 공급 받아야 한다.

보고에 따르면 제2형 당뇨환자의 20% 정도, 제1ㆍ2형 당뇨를 합쳐 55만 명가량이 인슐린치료를 받고 있다.

당뇨병에 걸리면 인슐린치료를 해야 함에도 이를 꺼리는 환자들이 아주 많다. 한국당뇨환우연합회가 지난해 인슐린치료 경험이 있는 중증 당뇨환자 300명을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0.3%가 의료진에게 주사치료를 권고 받고도 인슐린 치료를 미루고 있다고 답했다.

당뇨환자들이 인슐린치료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인슐린주사= 인생 끝’이라는 주변의 부정적 시선 때문이다. 4살 때 제1형 당뇨 판정을 받고 23년 간 인슐린치료를 받아온 최모(27ㆍ여)씨가 대표적 사례다. 최씨는 “당뇨는 감염병이 아닌데도 같은 반 친구들이 따돌림 했다”면서 “친구들이 ‘주사쟁이’라고 놀릴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기자가 만난 당뇨환자들은 인슐린치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와 편견이 콘크리트보다 견고하다고 했다.


“게으르고 뚱뚱하면 걸린다” 이해 부족이 편견으로

당뇨에 대한 일반의 이해 부족은 부정적 편견을 낳는 주요 원인이다. 당뇨병은 평소 게으르고 단 음식을 많이 먹는 등 자기관리에 실패한 사람들이 잘 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않은 실정이다. 당뇨병을 진단 받았을 때 환자들이 자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당뇨병의 병리ㆍ생리학적 특징을 모르는 데 따른 편견 또는 무지일 뿐이다.

전문의들은 “당뇨병은 식습관,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과 관련 있지만 발병 원인은 유전 문제 등으로 아주 다양하다”며 이같이 말한다.

제1형 당뇨환자의 경우 지인들에 자신의 상태를 공개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같은 권고에 대해 당뇨환자들은 ‘시기상조’라는 반응이다. 인슐린주사를 맞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왕따’가 되거나 과도한 ‘관심’ 때문에 일상생활이 지장 받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40대 당뇨환자(제1형 당뇨)는 “인슐린주사를 맞는다고 말하면 마치 마약을 투여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면서 “‘먹지 못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 것이 배려라고 착각하는 이들도 많아 차라리 발병을 안 알리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했다.

국내 당뇨병 치료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래서 인슐린주사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부터 씻어내야 한다.

인슐린치료를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은 ‘팩트’가 아니다. 전문의들은 “최근에는 당뇨 초기에 인슐린을 투여해 상태가 호전되면 투여를 중단하고 먹는 약으로 전환하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방식은 특히 30~40대에서 효과를 보고 있어 향후 인슐린치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TV 등 당뇨환자 부정적 묘사도 유감”재벌총수 등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뒤 당뇨병을 면죄부의 도구로 이용해 온 것도 우리 사회에 부정적 인식이 퍼지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뇨병 환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TV 드라마 등 언론의 보도도 당뇨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다.

염동식 한국당뇨환우연합회 회장은 “당뇨와 관련해 최악의 상황을 설정한 TV 프로그램이나 신문 기사는 많지만 당뇨 관리를 잘해 건강하게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보도는 부족하다”고 했다.

한 당뇨환자는 “당뇨에 걸리면 실명 하거나 다리를 자를 수밖에 없다는 ‘막가파’식 보도 때문에 상처를 입는 환자들도 적지않다”고 했다.

당뇨와 관련한 우리사회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인슐린 주사를 맞을 공간 마련 등 환자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 내과 교수는 “소아당뇨에 걸린 청소년의 경우 학교 내에 마음 편하게 인슐린주사를 맞을 장소가 마땅치 않은데, 환자들을 위해 공간 마련 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꾸준한 관리와 노력으로 당뇨를 극복하고 있는 유명 인사들이 인식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철식 한림대성심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외국에서는 연예인, 스포츠스타 등이 대중에게 당뇨에 걸렸음을 공개한다”면서 “대중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들이 당뇨 극복 과정을 소개하면 부정적 인식도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엑스맨’ ‘몬스터 볼’ 등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도 낯익은 할리우드 여우(女優) 할리 베리(Halle Berry)는 제1형 당뇨환자로 철저한 식이요법과 운동 등을 통해 20대 초반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당뇨병을 물리쳐 전 세계 당뇨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당뇨병 환자 두 번 울리는 사회 ‘인슐린 주사=인생 끝’ 아니에요

최근 5년 간 국내 당뇨병 진료자 수 (단위: 명)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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