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술과 위선

2016-03-26 (토) 09:32:08 최청원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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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삶에 깊숙이 관련된 일을 하는 의사, 교사, 언론인, 종교인등에게 직업윤리란 (각자의 선택이지만) 원칙적인 문제일 것이다. 의사의 경우 ‘히포크라테스’라는 이름은 인술의 대명사로 불리며, 최상의 가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피할수 없는 위선도 있게 된다. 영문 표기의 Hippocrates(히포크라테스)와 Hypocrite(위선자)는 스펠링도, 발음도 비슷하다.

미국예방협의회는 예방차원의 정기검진으로 유방암은 75세까지, 자궁경부암은 65세까지, 전립선암은 70세까지,대장암은 85세까지만 실시하라면서 그후엔 추천하지 않는다. 이 나이가 지나서 검사하는 것은 사망률 감소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면서도 그 연령 이후까지 정기검진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유 중 하나는 환자나 가족 모두 알 권리가 있다는 것(알게 되어 삶의질이 더 떨어지기도 한다, 특히 고령일 경우)이고, 또 무조건 살리려는 의사의 이기적(?) 본능과 생명의 절대적 존엄성의 맞물림, 그리고 모든 것을고려하여 검사를 안 하는데 무조건 무지의 소치로 보는 편견 등으로 검사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소신껏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내 부모나 내 자신을 치료하듯이 하여야 하나 그렇지 못하는 현실은 상호 신뢰와 이해가 부족해서 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바람에도 여러 색깔이 있다고 한다. 각 사람의 마음속에는 한 순간에도 수만 갈래로 부는 바람 같은 생각들이 있는데 그 마음을 한곳에 머물게 하기가 각양각색의 사람을 접하는 의사로서는 쉽지가 않다. 처세술(?)이란 것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즉 이유가 합당치도 않는 불의의 공격(변호사의 정상참작 없이 완전무결을 요구하는 직업본능과 거액의 돈이 개입된 의료분쟁)에 맞설 수 있도록 필요이상의 경비와 환자에게 힘든 시간이 되는 방어진료(검사…등등)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주위에서 의료소송 소식을 종종 듣는다. 항상 의사는 피고소인이다. 외과계통이 더 심하고 내과는 보통 작은 오진과 약 부작용 등 때문이다. 30년동안 한 번도 소송에 휘말리지 않은것은 내가 신통방통한 의술을 베풀어서가 아니고 환자들이 진료 중 일어 날 수 있는 오진들을 이해하면서 진료를 받았던 것 같다. 이들로 부터 사람의 냄새를 맡게 된다.

의사의 매일은 항상 긴장하며 인술과 위선 속에 살아야 되는 시간의흐름이다. 일전에 의료시설이나 의료 혜택이 없는 멕시코 오지 마을 의료봉사 중 심전도와 흉부진통 증세로 보아 급성 심근경색을 판정한 60대환자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즉각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심장을 모니터링 하면서 치료에 임해야 하며, 도저히 입원을 할 수 없는 피치 못할 처지라도 입원을 원치 않는다는 환자의 확고한 요구를 반드시 서면으로받아 이를 기록으로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환자와 의사간의 무너진 신뢰의 결과일 것이다.

그 멕시코 오지의 환자는 현지의 열약한 의료 환경 때문에 입원은 생각해볼 수도 없었다. 우리의 저편에는 이처럼 의료 혜택이 없는 곳이 많다. 단지우리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안 들릴 뿐이다“. 당신은 심근경색입니다.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지만 이 약들이 큰 도움이 될 터이니 꼭 복용하고 집에서 안정하고 있으세요” 하고 약 봉지들을 손에 쥐어주었다.

연신 감사하다고 하면서 돌아서 나가는 뒷모습과 현지의 의료현실이 안쓰러웠지만 서로의 대화만으로도 법적증거 서류가 필요 없는 의사와 환자, 아니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가 있는 진료를 한 것 같았다. 의사로서 흐뭇했고 시원했다.

일하다보면 종종 진실이 외면당한다. 의사들에겐 인술을 최우선으로소신껏 진료에 임해야 된다는 책임감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차가운 바람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도 운 좋게 향기가 풍겨나는 환자들을 만난다. 그 향기가 의사에겐 때때로 엄습하는 실망과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최선의 진료를 위해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고기쁨일 것이다.

<최청원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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