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암흑 속의 생명

2016-03-19 (토) 02:02:08 주숙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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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월하의 미인 같았다. 살결이 백옥같이 희고 싱그럽게 윤이 났으며 빼어나게 예뻤다. 둥그렇고 탐스러웠으며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다. 맛 또한 달큼하고 별로 맵지 않아서 일품이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까지 들먹이며 세 알의 큼직한 둥근 파를 하얀 비닐봉지에 담아서 지하실 냉장고 맨 아래 칸에 간직해 두었다.

글 쓰는 벗님네들이 들이닥치면 날것으로 맵시 있게 썰어서 치즈와 함께 포도주를 즐길 참이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은 채 족히 두달을 넘기고 말았다.

나는 평소 둥근 파 예찬론자로 항상 여분으로 많은 둥근 파를 사서 간직했다가 썩어서 버리는 낭비를 수없이 저지르곤 한다. 그러다가 이번 눈 속에 시장에 나가는 일이 번거로워지자 둥근 파 생각이 나서 지하실 냉장고 서랍을 열었다.

순간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노랗고 하얀 푸성귀가 서랍가득 차있었다. 거기에는 살아있는 생명이 촉촉하면서도 탐스럽게 피어나 있었다. 그 속은 한참 화창한 봄이었다. 그것은 실로 경이로움이었다.

보통의 둥근 파라면 물이 줄줄 흐르면서 독하고도 야릇한 매운냄새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을 것이고 순이 자랐다 해도 보잘 것없고 모체는 물렁한 허깨비로 변하는 데 이건 예외였다. 노란 줄기, 흰 줄기, 포동포동한 것들이 뒤섞여 여러 갈래로 길이가 15센티를 넘고 있었다.

세 개의 둥근 파에서 뻗어난 줄기 잎은 싱싱하고 풋풋해서, 서랍속은 봄기운으로 충만했다. 밖에는 눈이 쌓이는데 이 절묘한 대조라니.

그렇게 새싹을 피우고도 모태의 고운 자태는 별로 훼손되지 않았으니 신비롭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 같았다.

지하실에 놓인 냉장고 맨 아래서랍이면 광선을 기대할 수 없는 자리다. 그런데 어떻게, 그토록 야무진 새 순이 자랄 수 있었을까?
정감어린 감촉이며 풋풋한 모양새는 팔등신 미인 같았다. 한 점부족함이 없이 완벽하게 자란 푸성귀로서 생명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자란 둥근 파줄기는 너무 많은 것으로 나에게 감격을 주었다.


끈질긴 저력을 지닌 우수한 종자가 말하는 의미를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웠다. 빛도 없이 자란 줄기에 스며있는 품위 또한 대단했다. 사람 중에도 사람이라 부르기 어려운 추한 인간이 있는가 하면, 신이라고 불러주고 싶은 사람이 있듯이 둥근파에도 여러 층의 종자가 있는 모양이다.

흙도 물도 햇빛도 없는 곳에서 오직 새싹을 움틔우기 위한 일념으로 자신의 몸에 비축되었던 최후의 것까지 바치고 일어선 결기에 나는 묵념하듯 엄숙해졌다.

분명 엄청난 몸부림이 있었을것이다. 이런 것을 가리켜 생성의 미학이라 한 것일까. 둥근 파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외쳤겠지. “ 나는 생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나는 이 어둠의 요람을 생명의 활력으로 채우리라.” 고 다짐하였을 것이다.

둥근 파의 끈질김을 생각하며 나는 옷깃을 여미는 심정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주숙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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