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자병 vs 흙수저

2016-03-12 (토) 08:33:38 배광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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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만취상태에서 차를 몰다 무려 네 명의 목숨을 잃게 한 10대가 단지 ‘부자병 환자’라는 이유로 교도소 행을 면하고 10년의 보호관찰 처분만을 받은 사건이 미국 텍사스에서 있었다. 무분별한 10대의 일탈도 그렇지만 그 생소한 ‘부자병’이란 병명 때문에 한 때 화제가 됐다. 부자병이 그렇게도 위중한 병이라서 살인죄의 책임도 물을 수 없었단 말인가? 그때의 사건이 최근 다시 불거져서 뉴스가 됐다.

미국에서는 이미 50년대부터 이 부자병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넘치는 풍요를 주체할 수 없는 부자들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감정을 조절할 수 없게 되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게 된다는 게 부자병의 실체란다.

이선 카우치란 16살 난 소년은 아버지가 텍사스의 유지로, 한마디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일에 거침이 없었던 모양이다. 사고를 냈을 때도 상점에서 재미로 맥주를 훔쳐 달아나다 일을 저질렀다 한다. 흙수저를 문 가난뱅이가 죽지 못해 하는 도둑질이 금수저에게는 놀이에 불과한 모양이다. 어쨌든 그는 재판에서 그 아버지가 고용한 변호사가 ‘그가 삶이 너무 풍요로워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부자병 환자’라고 호소해서 관대한 처분을 받게 됐다. 유능한 변호사의 활약이 재판에 큰 역할을 했음을 실감케 한다.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힘은 역시 돈이다.

이런 뉴스들을 대하면서 나는 몇 가지 엉뚱한 생각을 갖게 됐다. 우선, 부자에게 부자병이 있다면 가난한 자에게도 빈자병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법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빵을 훔치는 것을 금하고 다리 밑에서 잠자는 것을 금한다’라는 말이 있다는데, 법은 신분이나 소유 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겠다. 부자가 무엇 때문에 빵을 훔치고 다리 밑에서 잠을 자겠느냐 해서 우수개소리로 들리기도 했는데 카우치란 부자집 아들이 상점에서 맥주를 훔치는 일이 벌어졌으니 이 말이 우수개로 치부할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부자나 가난한 자나 훔치면 꼭 같이 처벌하거나, 아니면 가난에 쪼들리고 쪼들려서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게 되고 결국엔 좀도둑이 되고, 강도가 되고 어쩌다 살인도 했다면, 구차한 정상참작이란 꼬리표를 달지 말고 빈자병을 이유로 무죄나 감형을 내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다음으로는 진실 찾기 게임이라 할 수 있는 재판에서 변호사의 유능 여부에 따라 유죄 무죄가갈리고 보상금액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느냐 하는 거다. 카우치 소년의 부자병 재판 케이스도 그렇고 O J 심슨 재판에서 보았듯이 돈과 유능한 변호사의 역량이 판결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심슨이 전 부인을 죽였다는 직 간접 증거들이 있었고 모두들 그가 범인이라 확신했지만 유능한 변호사들이 총 동원되어 배심원들로부터 무죄평결을 이끌어내어 미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었다.

한인 신문이나 TV 광고를 보면 무슨 변호사가 1250만 달러를 받아주었다느니 하는 광고가 나오는데 그것도 그 변호사가 남달리 유능해서 얻어낸 결과라는 얘기로 들린다. 만약에 돈이나 유능한 변호사들에 의해 재판이 좌지우지 된다면 과연 진실은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나는 법이나 재판에 관한 한 문외한이라 더 이상 나아갈 수는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오명을 듣지 않는 재판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사회계층을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나누는 수저계급론이 한창 유행인 모양이다. 가진 층이 가진 채로 대물림하고 못 가진 층이 또 가난을 대물림하는데다 빈부의 격차가 자꾸 벌어져 계층 간 갈등이 심각한 가운데 나온 신조어란다. 최근 세계가 겁내는 지카 바이러스가 유입되는 것도 경계해야겠지만 미국으로부터 부자병이 유입되어 횡행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의기소침해 있는데 부자병에 걸린 금수저들이 활보한다면 그 갈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배광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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