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주 교수, 초기 미국 선교사 자료조사 방미, 책 출판 계획
▶ 베커, 1905년부터 평양숭실, 연희전문서 35년간 교육 선교 사역
1905년부터 복음의 불모지였던 한국땅에서 35년간 교육 선교 활동을 펼쳤던 아더 베커 (Arthur Lynn Becker. 한국명 백아덕) 선교사(1875-1974)의 삶과 사역이 재 조명된다.
아더 베커 선교사의 자료 조사차 2일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한국 감리교신학대학교 이덕주 교수(한국 교회사)는 “초기 우리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 선교에 큰 족적을 남긴 베커 선교사의 자료 조사를 위해 이곳에 왔다”면서 “2년전부터 준비해 온 조사를 마무리 올해안에 베커 선교사의 생애와 사역 내용을 책으로 출판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덕주 교수는 이날 라피엣에 있는 옥몬트 메모리얼 세미터리( Oakmont memorial cemetery)에서 아더 베커와 아내 루이스, 딸의 묘소를 찾아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제안을 받았음에도 거절하고 한국의 낙후된 과학 교육을 위해 일평생 헌신한 선교사의 삶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왔다”고 밝혔다.
아더 베커 선교사는 1905년 미 감리회 한국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을 당하기까지 평양에서 10년, 서울에서 25년 교육 전담 선교사로 사역을 했다. 평양에서는 숭실학당과 숭실대학에서 장로교 Baird선교사와 함께 사역을 했다.
1915년 이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부 교장, 이과 학장으로 헌신했다. 그는 숭실과 연희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천문학,물리학등을 가르쳤다. 베이커의 제자로는 해방후 한국 과학계를 이끈 이춘호 (연대 이과 대학장), 최규남 (전 서울대 총장), 이원철(한국 천문학 개척자)등이 있다.
그가 선교 초기 평양숭실학당에서 길러낸 제자들로는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원장을 지낸 손정도 목사와 삼일운동민족 대표 33인중 1인으로 참여했던 김창준 목사등이 있다. 베커는 해방후 잠시 미군정청 고문관 자격으로 한국에 와서 교육정책을 도왔고 전쟁후에는 한국 교회와 기독교 기관 재건을 지원했다.
베커는 미시건주에서 태어나 Albion college를 고학으로 공부 했는데 수학과 물리학,과학분야의 뛰어난 실력자였다. 후에 미시건 주립대학에서 오팬하이머와 함께 핵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커는 1954년 은퇴후에는 딸 가족과 함께 라피엣에 거주하다가 1974년 별세, 1961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루이스와 함께 옥몬트 메모리얼 묘소에 안장되어 있다. ‘숭실대학 뿌리 찾기 역사 위원회’요청으로 책을 집필하고 있는 이덕주 교수는 ‘백아덕과 평양 숭실’이란 제목으로 책을 출간할 계획으로 있다.
엄승호 멕시코 까말루지역 선교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이덕주 교수는 “초기 선교사들은 기독교 복음 전파와 함께 한국 교회와 사회 발전을 도운 은인”이라면서 “선교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이번에 LA 로즈데일 묘역에 있는 맥클레이(Maclay) 선교사 묘소도 방문했다고 밝혔다.
이덕주 교수는 현재 (사) 한국 기독교 역사연구소 소장으로 ‘초기 한국기독교사 연구’ 저서와 아울러 ‘선한 사마리아인의 조선사랑: 스크랜턴 모자의 선교 이야기’와 한국 선교의 물꼬를 튼 미 감리회 로버트 매콜레이(Robert S.Maclay)등 선교사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한 많은 글들을 써오고 있다. 또 ‘한국 기독교 선구자 한석진 목사의 생애와 사상’ ‘쉽게 쓴 한국 교회 이야기’등 저서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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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