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신생아의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긴급 자금 18억 달러(약 2조1천555억 원)를 편성해달라고 미국 의회에 요청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8일 미국 CBS 방송 '디스 모닝'과의 인터뷰에서 "의회가 지카 바이러스 확산 대책 자금을 승인하면, 이 돈을 모기 박멸과 방역, 백신 개발, 임신부를 위한 예방 교육 등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지카 바이러스는 주로 모기를 통해 전파되지만, 최근 성관계 또는 수혈이 감염 경로로 드러나면서 전 세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브라질을 필두로 중남미 국가 26개 지역에서 급속도로 전파 중인 지카 바이러스가 미국 본토에 상륙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미국과 캐나다 등 아메리카대륙 전체로 확산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2년 전 전 세계를 강타한 에볼라 사태 때 넋 놓고 있다가 당한 미국 정부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자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평했다.
미국 정부는 아프리카 서부 지역에서 창궐하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미국과 같은 의료 선진국에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다가 자국에서 첫 확진 판정 환자와 감염자가 잇달아 출현하자 뒤늦게 통제에 나서 국민의 원성을 샀다.
늑장 대처는 물론 미국 보건 정책의 본산 격인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각 주 정부 보건 당국의 거듭된 엇박자로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에볼라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인 '에볼라 차르'를 임명하고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당시에 얻은 교훈으로 지카 바이러스가 미국에 본격 상륙하기 전 방역과 예방 교육에 전념해 확실한 대책을 세우겠다는 게 오바마 행정부의 각오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볼라 바이러스와 달리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죽진 않는다는 게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면서 "공포에 떨 필요는 없지만, 임신부와 임신을 고려 중인 여성에게 중대한 위험을 끼칠 수 있다"며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성명을 내어 "CDC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5일까지 지카 바이러스 확산 지역을 방문한 미국 여행객 중 50명이 지카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했다"면서 "모기가 기승을 떨칠 봄과 여름이 다가옴에 따라 (중남미와 가까운) 남부 지역을 포함한 미국 전체의 확산을 막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긴급 자금 편성 요청을 설명했다.
NBC 방송에 따르면, 백악관은 긴급 대응 자금 18억 달러 중 14억8천만 달러를 보건부에 배정할 예정이다. 보건부에 할당된 자금 절반 이상이 CDC의 지카 바이러스 연구·분석에 투입된다.
또 2억5천만 달러는 현재 지카 바이러스 관련 '긴급 보건 상황'이 선포된 미국령 준주(準州)인 푸에르토리코의 임신부 의료 지원비로 사용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볼라 확산 사태 당시 의회에 60억 달러의 긴급 자금 편성을 요청했고, 의회는 54억 달러를 승인했다. 당시 의료 단체들은 수년에 걸친 예산 삭감 탓에 미국의 질병 대처 능력이 손상됐다며 의회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