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속담으로 본 어느 후보

2016-01-15 (금) 10:27:47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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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나는 속담의 매력에 끌려있다. 천태만상의 인생살이 모습을 짤막한 문장으로 응축, 표현한 것이 재치의 극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고유의 속담으로 알고 있던 내용이 서양에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속담에 대해 더욱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내용이 거의 같은 것은 물론이고 단어까지 같은 것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요즘 미국 대선 뉴스를 지켜보던 중 후보 한명에게 적용될 수 있는 속담 세 개가 떠올랐다. 첫 번째가 “사기그릇 가게 안에 들어간 황소(A bull in a china shop)”라는 표현이다. 황소, 그 중에서도 성난 황소가 사기그릇 가득한 가게에 들어가 한바탕 난동을 부리면, 어떤 결과가 올지는 자명하다. 특히 가게 한가운데 놓여있는 ‘PC( 정치적 약자 배려)’라고 쓰인 그릇은 이 후보가 첫번째로 때려 부수는 대상이다. 미국이 잘못 가고 있다는 불만의 밑바닥에는 바로 이 PC 때문이라는 여론에 편승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계산된 파괴행위 일지도 모르지만 “마구 뚫린 창구멍”이라는 한국 속담을 연상케 한다.

두 번째 속담은 “예의, 규범을 지키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Civility costs nothing)” 이다. 무인도에 홀로 살지 않는 한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고 공존하며 산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은 기본적인 생존전략이자 문명사회를 지탱하는 필수조건이다.


그렇지만 이 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십억 달러 부자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한국 속담에 이 후보는 코웃음을 칠 것이 분명하다. 천냥 아니라 만냥 빚도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까짓 천냥 빚 갚으려고 할 말을 고르느라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후보의 도를 넘는 막말 사태는 시간이 갈수록 더 열기를 뿜고 있다.

세 번째 속담은 “행복을 지나치게 자랑하는 사람은 슬픔을 자초한다(He that talks much of his happiness, summons grief)”이다.

문제의 이 후보는 입을 열었다 하면“나는 스마트 하다. 돈이 많다”로 시작해서“그러니까 나는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다”로 끝을 맺곤 한다. 속담은 경험에 근거한 경고이지 100% 맞는 예언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자랑이 슬픔으로 끝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한국에도“자랑 끝에 불 붙는다”는 속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나친 자랑은 어느 문화에서나 경고의 대상이라는 것을 그가 알았으면 한다.

이 후보가 현재 수많은 유권자로부터 박수갈채와 지지를 받고 있는 배경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100년 전만 해도 미국은 토박이 백인들이 80% 이상을 차지했던 백인중심 사회였다. 그 후 미국사회가 어떻게 변해왔고 변하고 있는지는 우리 모두 목격하는 바이다. 특히 인종구성면에서 정신 차릴 수 없이 빨리 변하고 있는 현실에 적응력을 잃은 백인들의 불만과 불안감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것이 이 후보의 전략이다.

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이 알았으면 하는 사실이 있다. 오랜 세월 멸종하지 않고 종족을 지속시킨 생물들은 힘이 세거나 두뇌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능력 덕분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발견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미국도 변하고 있다.“그 옛날 좋았던 세상”그대로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변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대세에 신축성있게 적응하는 것이 바로 미국의 장래를 단단하게 하는 활력소라는 것을 이 후보가 설득시켰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바람은 실현가능성 제로라는 결론이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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