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야곱의 축복
2016-01-13 (수)
김문철 목사
김문철 목사/천성교회 담임
새해가 되면 대부분 벅찬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그래서“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좋은 일로 가득하시길 바랍니다”라며 덕담을 나눈다. 하지만 아무리 풍성한 덕담을 나눈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의 근심과 염려를 없애주지는 않는다. 미래는 항상 내가 바라는 데로 진행되지 않을뿐더러 예측을 불허하기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야곱이라는 사람이 나온다.그는 교활한 사람이다. 둘째 아들로서 형의장자권을빼앗으려 호시탐탐 노리던 사람이다.고대 유대 사회에서 장자(맏아들)의 특권은대단하다.아버지가 갖는 모든 권한(재산,명예,책임등) 을 물려받기때문이다.야곱은 기회가 주어지자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권한을 가로챈다.이후 야곱은 복수가 두려워 멀리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 간다.삼촌 집에서 고생끝에 가정을 이루고 부자가 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고향이 그리워 다시 돌아간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기대감으로 가득했지만 두려움도 있다. 형 에서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때문이다.
귀향 길에서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기로 한다.그런데 형과의 만남 하루 전날 밤 얍복 나루에서 신비의 사람을 만난다. 야곱은 이 신비의 사람이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임을 직감한다. 그래서 그에게 복을 구하기 위해 밤새도록 하나님의 사람과옥신각신 씨름한다. 야곱은“내게 복을 주지 않으면 못갑니다”라며 복을 구했고 하나님의 사람은“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며 맞섰다. 씨름은 야곱의 승리로 끝나지만 그는 허벅지뼈(환도뼈)가 골절되어 평생 핸디캡으로 살아야 하는 고통을 겪는다.(창 32)
야곱은 승리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로 받는다.“움켜쥐다”는 뜻의 야곱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다”라는뜻의 이스라엘로의 전환은 분명 축복이다. 왜냐하면 새 이름은 새 정체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야곱은 이후“승리자”라는 새로운 정체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정체가 그의 삶에 더 이상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비록 그의 삶이 두려움과 실패를 경험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상 그는 이미 승리자라는 의미다. 씨름 이후 만난 두려움의 대상인 형 에서와의 화해가 이를 반영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다.
많은 경우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면 항상 복이 주어지고 좋을 일로 가득 찰 것이라 믿는다.하지만 믿는다고 해서 그삶이항상축복으로만채워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허벅지뼈가 골절되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불의한 현실로 인해 근심과 고통에 직면할 수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 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승리자”라는 의미의 새로운 이름(정체)은분명 최고의 복이다. 그 이름 속에 하나님의 약속(승리자/구원)이 담겨져 있기때문이다.
교활한 야곱 같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다.하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가장 놀라운 특성 중에 하나다.왜냐하면 기독교의 복은 인간의 조건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다르기도 하다.따라서 복의 초점을 내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으로 돌리는 것은 중요하다.실제로 야곱은 새로운 이름을 얻은 이후시련으로 가득한 삶 중에도 새로운 신분에 걸맞게 살아간다.교활함을 극복하고 경쟁에 초연하는 힘을 얻는다.야곱의 축복이다.
2016년 새해가 밝았다. 복과 좋은 일로 가득하시길 기도한다. 하지만 혹여 어려움 있어도“내가 너를 지켜줄 것이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시길 바란다.그 약속이 지금 나를 승리자로 살게 하고 영원한 승리를 거듭 확신하도록 이끌 것이다.야곱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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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철 목사>